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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는 ‘차금법’ 문제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거울

입력 2022-01-27 03:05:02
1938년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 돼 신사참배를 반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이방 신을 숭배하는 치욕과 수난을 겪었다. 차별금지법 문제도 교회가 일치단결하지 않는다면 법 제정을 막을 수 없다. 사진은 2020년 7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 창립총회. 국민일보DB




한국교회가 지은 신사참배의 죄에 대해 되돌아보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만일 모든 한국교회가 힘을 합하여 저항했더라면 그것은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저항을 포기한 사람들에 의해 지도자들의 의견들이 분열되었고, 결국 신사참배의 강요에 굴복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것은 모든 교회사가가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둘째, 마귀는 그 죄악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일제는 이 신사참배가 종교 행위가 아니라 국민의례라는 명분을 들고 나왔고, 많은 지도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 가운데는 실제로 그렇게 믿은 사람들도 있었고, 강요 때문에 굴복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렇게 믿고 싶어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셋째, 마귀는 처음에는 조그만 것부터 시작하며,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면 점점 더 심한 요구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는 국민의례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자, 일제는 더 심한 것들을 강요했다.

천조대신이나 천황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높은 신이라고 주장해도 받아들여야 했다. 교회당 안에 간이신사를 설치하고 그것에 절하라고 해도, 예배시간에 신도예배를 함께 드리라고 해도, 목회자들에게 신도침례를 받으라고 해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신사참배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수용했기 때문이다.

넷째, 마귀는 처음에는 양처럼 접근해서는 폭군으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신사참배가 처음에는 국민의례라는 부드러운 얼굴로 나타났지만, 일단 결의가 이루어지자 곧바로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무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섯째, 법적 결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날치기 결의였지만, 총회에서 일단 결의가 이뤄지자 그것은 모든 배도의 근거가 되었고,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빌미가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총회의 결의나 법은 그것이 나쁜 것이라면 어떤 형태든 방관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통과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교훈은 오늘날 문제가 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평등법과 같은 악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차별금지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사참배 문제와 유사성이 있다.

첫째, 신사참배가 그 속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국민의례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처럼, 차별금지법도 그 속에 들어있는 죄악을 숨기기 위해 인권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고 있다. 소위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참으로 그럴듯해 보이고 선한 동기가 들어있는 것 같지만,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엄청난 죄일 뿐이다. 우리는 그 가면에 속아서는 안 된다.

둘째, 신사참배가 조그만 것에서 시작해서 더 큰 배도로 이어진 것처럼, 동성애도 하나를 양보하면 더 큰 것을 양보하게 되어 있다. 동성애도 처음에는 동성 간의 애정을 허용하는 것에서 시작하다가 지금은 동성 간 결합까지도 허용하고 있다. 또 처음에는 육체적 성전환만을 트랜스젠더로 인정하다가 나중에는 육체적 성전환 없이 본인의 성정체성 주장만으로도 트랜스젠더로 인정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나중에는 일부다처제도 소위 성소수자의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보호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셋째, 신사참배가 국민의례라는 부드러운 얼굴로 시작했다가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폭군이 됐다. 차별금지법 역시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라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무서운 얼굴로 돌변하게 된다. 이미 이 법은 동성애 반대자에 대한 탄압과 처벌 조항을 담고 있다. 신사참배의 가장 큰 피해자가 기독교였듯 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피해자도 기독교가 될 것이다.

넷째, 신사참배가 총회에서 결의되자 다른 모든 배도의 근거가 된 것처럼, 동성애 역시 법으로 합법화되면 교육이나 문화적인 면에서 다른 모든 죄악을 허용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 법에 따라 학교에서는 동성애 옹호 조장교육이 진행될 것이다. 언론과 문화 예술에서는 동성애를 미화하게 될 것이고, 삶의 현장에선 동성애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법이 제정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다섯째,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교회지도자들이 일치단결하여 반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사참배가 한국교회에 강요된 것처럼 차별금지법 문제에 대해서도 교회가 일치단결되지 않는다면 이 법이 제정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교회는 하나 된 목소리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이런 면에서 신사참배 문제는 차별금지법 문제를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거울’이다. 팬데믹 시대 신앙을 위협하는 갖가지 시도에 대응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도 교회사를 더욱 깊이 연구해 나아갈 길을 찾자.

오창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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