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은 남종화 대가이고, 아버지는 광주기독병원 첫 한국인 원장이다. 본인도 개원한 병원장이다. 이쯤 되면 580여 명의 아동을 후원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광에서 인심 난다’며 깎아내려도 될 듯하다.
허달영(56) 김포H병원장은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착한 기부자상에서 개인부문 장관상을 수상했다. 28일 서울 용산구 컴패션 사무실에서 허 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뒤 편견은 깨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허 원장은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기독교 신자셨다. 두 분 기도로 부모님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얘길 들었다”며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의 삶에 방향을 제시한 건 아버지다. 허 원장은 “아버지는 1960년대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전남대병원에 이어 광주기독병원에서 일하셨다”며 “광주기독병원의 첫 한국인 원장인 허진득 원장”이라고 소개했다.
광주의 기독교 선교 발상지이자 병원이 있던 양림동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허 원장은 낯선 광경을 봤다.
“저희 가족과 외국인 의료 선교사들은 사택에서 살았어요. 선교를 위해 월급도 안 받고 낯선 한국에서 한국 사람을 돕는 외국인 의사들을 보며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 허진득 원장은 어린 아들의 결심을 듣고 “나중에 한다는 사람치고 하는 사람 못 봤다. 돕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바로 실행하라”며 독려했다. 그러나 ‘실행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실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열등감에 빠졌고 교회도 멀리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열등감이 아닌 교만이었죠. 청렴한 아버지와 다르게 큰 병원에서 돈 많이 벌겠다는 교만이요.”
20여 년간 방황하며 주일예배만 드리는 선데이 크리스천의 삶을 살았다. 컴패션과의 인연도 아내인 경인여대 유아교육과 하얀(52) 교수와 자녀가 먼저 맺었다.
하 교수는 “2009년 자녀가 봉사할 기관을 찾던 중 컴패션에 갔다가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면서 “왠지 남편이 이걸 보면 큰일 나겠다 싶어 적극적으로 소개하지 않았다”고 했다. 2년 뒤 아내를 통해 허 원장은 컴패션 후원자 모임에 참석해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서정인 컴패션 대표의 설교를 듣다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는 “목자의 부름에 고개 돌리는 양과 같은 느낌이었다. 하나님이 궁금해졌고 미친 듯 성경책만 읽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뭘까 찾았다. 2013년 21명의 아이들을 후원한 뒤 후원 아동을 늘렸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사용할 방법도 고민했다. 과거 함께 일한 지인이 허 원장의 생각을 듣고 재활병원을 제안했다.
“정형외과 의사인 저는 수술을 좋아했어요. 화가인 할아버지 손재주를 닮아 잘하기도 했고요. 재활병원은 그걸 포기해야 했죠.”
허 원장의 할아버지 허백련 선생은 화가이자 창씨개명을 거부한 민족주의자다. 사회 교육을 위해 농업기술학교도 세웠다. 임종 직전 아내이자 허 원장의 할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영접했다. 허 원장은 “신앙 안에서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전인적인 재활치료에 나서기로 했고 2019년 김포H병원을 개원했다”고 말했다. H는 ‘성령(Holy Spirit)’의 약자다.
수술 전문 병원이 아니다 보니 개원 첫 달부터 적자였다. 직원 월급을 걱정해야 할 때 허 원장은 비전트립을 갔다.
“일곱 번 비전트립을 갔는데 그때마다 현장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봤어요. 한국에 돌아오면 천국에 있다가 온 느낌이었죠.”
비전트립에서 위로받은 덕인지 병원 경영은 차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다 개원 1년 만에 코로나가 터졌다. 사람과 접촉하는 재활병원 특성상 직격타를 맞았지만 후원은 멈추지 않았다.
하 교수는 “병원 상황은 어려운데 남편은 후원을 늘렸다. 남편과 하나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제가 개입할 게 아니라 보고 말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허 원장의 후원 아동은 100명이 늘어 586명이 됐다. 그 사이 10명은 졸업생이 됐다. 아내와 세 자녀까지 허 원장 가족이 후원한 아동은 591명이다.
“개원 1년 전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막연히 500명을 후원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실현된 셈이죠.”
그렇다면 허 원장은 후원 아이들을 모두 기억할까. 그는 “처음 후원한 21명은 이름을 기억하며 기도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돼 고민이 됐다”며 “비전트립 현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선생님을 본 뒤 나는 아이들이 기도와 믿음의 시스템 안에 들어오도록 후원하는 역할을 하자고 마음먹었다”고 고백했다.
인터뷰 말미 허 원장이 “내 얘기보다 중요한 게 있다”며 컴패션 얘기를 꺼냈다. 그는 “우리가 현장에 가지 않아도 아이들을 잘 아는 현지인과 교회가 보호해 주는 1대 1 양육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요한복음 13장 34절을 말했다.
“컴패션을 통해 다른 세계가 열렸는데 제가 만든 세상이 아니에요. 저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지 상상하며 그 일의 통로가 되도록 순종할 뿐입니다. 그저 아이들이 저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이들을 돕는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