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 소설가란 이름을 달고 등단한 지 꼭 40년 만에 2021 PEN문학상을 받았다. 수상작인 단편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멍’을 심사한 김지연 김유조 소설가는 심사평에서 “남편과 외동딸을 구멍 속에 넣어 묻어버린 뒤에 엄습한 구멍 공포증에서 마침내 벗어나 진짜 아름다운 구멍인 영생의 장소, 천국을 갈망하는 인간의 갈구가 그려져 있는 깊은 사유와 성찰의 내면 심리가 꼼꼼히 기록돼 있다”고 평했다.
순간 이 자리까지 와서 서 있는 내 인생의 뒤안길이 눈앞을 스쳤다. 모질게 불어오는 거친 풍우대작이 없었다면 멀고도 험한 좁은 협로의 절경도 없을 터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역경을 통해 힘차게 살아온 지난날의 뒤안길이 아득하게 눈물로 흐려진 눈앞에서 출렁였다.
목사의 아내로, 교회의 사모로서 성도들 그리고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시부모와 시동생 시누이 등 많은 사람을 돌보면서 40년간 출판된 책들이 30권에 달한다. 그것도 한곳에 머물면서 집필한 작품들이 아니다. 남편 신성종 목사의 험난한 목회지를 따라서 태평양을 넘나드는 정신없는 생활이었다.
1993년 국민일보에 연재한 대하소설 ‘바람 바람 새바람’은 3부작으로 1부만 규장에서 출판됐다. 목회지를 미국 LA로 옮기는 상황에 나머지 원고는 사라져버려 2부 3부를 애타게 찾다가 포기했다. 이 대하소설은 버리자 하고 잊고 지내던 터에 우연히 그간 끌고 이사 다닌 짐들을 정리하는 중에 세월의 때를 뒤집어쓴 원고 뭉치를 버리려는 쓰레기에서 찾아냈다. 순간 하나님의 손길을 뜨겁게 느끼며 울컥했다. 어떻게 이 원고가 그간 나를 따라다녔는지 신묘한 미스터리이고 기적이었다. 그 순간 내가 왜 소설가가 되었는지 하나님의 줄을 보았다. 내 가슴을 꽁꽁 묶어 끌고 가는 바로 그분의 손이다.
PEN문학상을 받는 내게 모두들 하는 인사말은 이렇다. “벌써 받았어야 하는 상인데 너무 늦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말을 하기에 내 나이 팔순이 넘어 상을 받으니 동정으로 하는 말인가 하여 살짝 부끄러움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인사말에는 힘이 났다. “한국문학에서 크리스천 순수문학으로 가장 큰 문학에게 올리는 상입니다. 그간 애써온 기독교 문학을 일반 문단이 인정한 것이니 당당하게 받으세요.”
내가 고집스레 물고 늘어진 내 작품의 문학성을 인정했다는 유명 소설가의 축하에 드디어 해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나와 기독교 주제 문학이 인정받았구나 하는 쾌재가 터졌고 이건 순전히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그간의 수고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한구석에 숨겨진 나를 끌어내 세운 것이라는 확신이 와서 그저 감읍할 뿐이다.
존경하는 평론가 김봉군 교수는 “이건숙 작가는 우리 기독교 소설계의 정금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기독교적 서사에 신실한 기독교 소설가는 손꼽을 정도다”라고 평했다. 많은 위로와 힘이 된다.
약력=1940년생, 서울대 사범대 독어과 졸업, 미국 빌라노바대 도서관학 석사, 198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 크리스천문학나무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