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건축물’
충청남도 내포 서산에서 안면도 바다로 향하는 왕복 2차로 길가에 해발 353m의 도비산이 보이고 서쪽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에 세워진 건물을 경희대 이은석 건축학과 교수는 이렇게 소개했다.
코마건축사사무소 대표이기도 한 이 교수는 이 건물을 직접 설계했다. 2017년엔 제40회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기도 했다. 바로 2014년 충남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세워진 부석감리교회(옛 하늘보석교회)다.
이 교수는 “교회가 시골 마을에 놓일 때 주변과 격리되지 않고 주민들과 어울리고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들린 건축, 열린 가치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뜬금없나 확인하기 위해 지난 7일 나선 교회건축 순례길에는 이 교수와 함께 동서말씀교회를 섬기는 목사이자 소설가, 건축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주원규 작가가 동행했다.
하늘로 뜬 삼각형
교회는 Y자형으로 시작되는 땅의 형태에서 출발했다. 땅 모양에 맞춘 삼각형의 노출 콘크리트 벽면은 삼위일체의 의미를 담아 하늘로 들렸다. 삼각형의 구조물이 부유하듯 뜨면서 아래엔 열린 공간이 만들어졌다. 하늘정원이라 불리는 보이드(공간)다. 이 교수는 “교회 건축가는 상징적인 걸 고민한다. 근대 기능주의 출현 이후 교회건축이 포기한 건축물의 상징성과 장소의 의미를 추상적 이미지로 회복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삼각형의 벽면은 땅을 의미하는 교회 공간과 연결됐다. 마치 성(聖)과 속(俗)의 영역을 상호 연결하고 분리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듯 보인다. 하늘정원과 교회 공간 사이엔 20m 높이의 유리십자가탑이 세워졌다. 유리십자가는 하늘에 보석을 쌓는 은유적 표현이자 수직적 하늘의 진정한 가치는 수평의 땅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직사각형의 교회 공간도 남다르다. 하늘정원에서 시작돼 교회 안을 관통한 뒤 반대편 마을광장으로 이어지는 내부 통로는 교회 공간을 두 개의 직사각형으로 분리했다. 큰 직사각형엔 예배 공간, 작은 직사각형엔 카페 화장실 행정실 등 실용 공간을 담았다.
내부 통로에도 공간의 개념을 부여했다. 이 교수는 “내부 통로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난간을 벽처럼 막아 또 하나의 직사각형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통로 위 천장엔 세 개의 구멍을 뚫었다. 자연채광이 들어오는 구멍엔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하는 파랑, 노랑, 붉은색을 입혔다.
교회 안으로 주변의 전경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도 곳곳에 배치했다. 자연과 이웃이라는 수평적 가치에 시선을 두며 묵상하기 위해서다. 부유한 삼각형 구조물 아래로 교회 앞 풍경을 볼 수 있다. 외부에서 2층 예배당으로 바로 올라가는 하늘계단 옆 난간은 보행자의 시선에 맞춰 길게 뚫었다. 그래서인지 구멍을 통해 교회 주변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주 작가는 “틈새 전경은 성과 속의 콜라보 같다”며 “계단을 올라 통창 너머로 보이는 유리십자가에선 결기가 느껴진다”고 전했다.
예배당은 타원형이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하게 감싸준다. 강대상은 성도와 눈맞춤하도록 높이를 낮췄다. 이 교회 담임인 천 목사는 “강단 뒤 십자가 위로 자연광이 들어와 조명도 없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다. 햇빛을 받으면 십자가는 찬란하게 빛난다”고 강조했다.
소재의 특성도 살렸다. 이 교수는 “노출 콘크리트는 경제적 부담도 덜고 고상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청교도 정신에 부합하다”고 설명했다.
바닥조명의 활용도도 높다. 내부 통로의 가장자리에 깔린 조명은 성도와 지역 주민 모두 편히 오가라는 의미에서 활주로를 표현했다. 이 교수는 “노출 콘크리트와 바닥조명의 결합도 생각했다. 하늘정원의 삼각형 구조는 바닥조명의 불이 켜지면 더 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지역을 품은 수평적 전경
교회 안 하늘정원과 맞닿은 곳에 자리한 카페 ‘나드향’은 지난 7일 문을 열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를 보며 이 교수가 내뱉은 첫 마디는 “드디어”였다.
이 교수는 조문현 전임목사에게 건축 의뢰를 받았을 때 교회 위치에 주목했다. 하늘정원 반대편 교회 양옆으로 보건소와 주민자치센터가 있었다. 현재 교회 바로 뒤로 면사무소도 세워지고 있다. 인근엔 초등학교도 있다. 교회가 이들과 어우러지는 방법을 고민했다.
2019년 4월 취임한 천 목사도 교회 건물이라는 잘 만들어진 하드웨어에 공교회성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담기로 했다. 설계자인 이 교수의 의도와 맞닿았다. 교회 공간을 활용한 카페가 대표적이었다. 천 목사는 “지역 복음화와 교회에 활력을 넣기 위해 기도하던 중 카페를 열기로 했다”고 전했다.
사업등록도 마쳤다. 카페 이름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닦은 기름 나드에서 가져왔다. 권사와 집사 등 8명이 무보수로 봉사하니 커피값은 저렴하다. 천 목사는 “이윤 추구보다 지역을 섬기는 게 목표다. 카페 수익금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카페 덕에 안 그래도 낮았던 교회 문턱은 더 낮아졌다. 천 목사는 “교회에 안 다니던 자녀가 부모님 보러 카페에 오기도 하고 지역주민과 보건소, 자치센터 직원들도 오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카페를 “사랑방”이라고 소개했고 천 목사는 “선물”이라고 정의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천 목사는 여기, 저기 불려가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카페만 있는 게 아니다. 식당인 1층 만나홀과 내부 통로는 전시 공간이 된다. 얼마 전엔 서예 작품을 전시했다. 주 작가는 “이 지역 한서대 강의를 위해 오가면서 교회를 봤다. 잘 지은 하드웨어라 생각했고 그 안에 어떤 콘텐츠를 채울지 궁금했는데 상상 이상”이라고 감탄했다.
열린 교회는 목회로도 이어졌다. 천 목사와 성도들은 매주 목요일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주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계를 없앴다. 주민들도 거리낌 없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부 통로에 붙여놓은 ‘2022년 우리의 이웃’은 올해 성도들이 전도하고 싶은 주민들이다. 명단에는 이름도 있지만 누구의 엄마, 무슨 가게 사장님 등 친근한 명칭으로 표기돼 있다.
천 목사는 “우리 교회의 상징인 삼각형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뜻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 교회, 교인을 의미한다”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이 생수의 강처럼 흘러 들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산=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