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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건숙 (10) 신앙 두텁고 다재다능 어머니… 자녀 교육에 전심전력

입력 2022-02-22 03:05:02
소설가 이건숙(왼쪽) 사모가 1963년 서울대 사범대 졸업식에서 어머니와 함께 서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머리가 좋고 총명한 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붓글씨도 명필이라 전시회에 가끔 출품도 했다. 지금도 우리 형제들 집에는 병풍 액자 족자 심지어 도자기에 쓴 글들이 유물로 남아있다. 뜨개질도 잘해서 내 옷을 시집간 뒤에도 조끼랑 덧옷까지 손수 떠서 입혔다. 눈이 아주 안 보일 때까지 내가 출판한 책이나 사위가 낸 책 모두를 한 권도 빠짐없이 읽고 평을 하셨던 분이다.

어머니는 한문을 혼자 공부해 터득했고 일찍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선교사의 마음에 들어 어머니를 미국 유학 보내 장차 큰 일꾼으로 쓰려고 수속 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외할머니였다. 그 당시 여자의 결혼 연령은 16세 후반이었는데 어머니는 20세가 넘도록 결혼을 거부하고 이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니 집안 망칠 일이 터졌다고 난리가 났다. 김 진사 댁 외손녀가 저 꼴이라고 친척들이 모이면 수군거리니 창피해서 밖에도 못 나간다고 외할머니는 단식하고 누워버리니 어머니 입장은 난감했다. 책상 위에 가져다 놓은 사진은 일본 유학 중인 법대생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가정이 난리를 치니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슬쩍 봤다고 한다. 사각모를 쓰고 있는 잘생긴 얼굴에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나.

어머니가 가르치고 있는 학교에 손님이 왔다고 해서 나가보니 사진의 그 남자가 사각모에 망토를 두르고 현관에 서 있는데 어머니가 위아래로 날카롭게 훑어보았더니 남자 쪽이 머리를 푹 숙여버렸단다.

어머니는 전심전력해서 우리를 가르쳤다. 오로지 우리를 돌보는 것이 주된 일이어서 나는 늘 어머니 옆에서 책을 읽었다. 어머니도 책을 끼고 살았다. 내 책꽂이에는 그 당시 나오는 잡지나 어린이 책들이 늘 쌓여있었다. 아버지 서재에도 책들뿐이고 어머니도 책만 끼고 도니 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셈이다. 남편도 책을 좋아하니 결혼한 뒤 지금까지 책들 속에 묻혀 살고 있다.

어머니는 명필이고 아버지는 악필이었다. 지금 우리 형제 가운데 첫째와 셋째는 어머니를 닮아 명필이고 나와 막내는 아버지를 닮아 악필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고 오는 재판에 관한 서류를 모두 대필해주었던 것으로 안다. 나라 형편이 수상하니 미국으로 유학을 가자고 밤마다 영어를 공부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이 선하다. 어머니는 살림에 지쳐 아버지 앞에서 까닥까닥 졸면서 아버지의 영어 발음을 잘 따라 하지도 못했다. 그때 미국으로 가족을 데리고 유학을 떠났다면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희생물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만약이 없지 아니한가.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데리고 전쟁 후 혼자 된 어머니는 더욱 우리 공부시키는 일에 매달렸다. 아버지처럼 네 자녀를 모두 법관을 만들겠다고 우리 앞에서 다짐했다. 첫째와 셋째는 그래서 법대를 나와 오빠는 판사가 되었고 셋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신학교를 나와 거리 목회로 유명한 목사가 됐다. 유복자인 막내는 아버지를 몰라서인지 집안의 말썽꾸러기로 언제나 저지레를 했다. 가정의 기초가 흔들리니 머리 좋고 예민한 막내는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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