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와는 달랐다. 현장은 봉쇄돼 접근조차 어려웠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은 수시로 발생했다. 무엇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생각보다 많았고 범위는 넓었다.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구호 현장 이야기다. 13일(현지시간)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 사무총장 천영철 목사의 “4000만명이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다”는 말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압축한 표현이었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대표는 지난 11일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국외로 대피한) 난민 수가 비극적이게도 오늘 250만명에 도달했다”며 “우크라이나 내에서 발생한 난민 수도 2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구 4320여만명 중 4000만명은 여전히 자국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한교봉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지난 8일부터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 실사단’을 꾸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루마니아에서 피란민 현황을 파악하고 한국교회 난민지원 미션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당초 국경을 빠져나온 피란민 돕기에 주목했던 실사단은 현장에서 구호 사역을 진행한 뒤, 우크라이나에 남은 사람을 돕는 방법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교봉과 KWMA는 전날인 12일 루마니아 남동부 툴체아주 이자체아 국경에서 의약품 등을 우크라이나 오데사 지역으로 보냈다. 이를 위해 콘스탄차주 지역 교회와 연합했다. 베델순복음교회 루치안 로타루 목사는 “오데사 지역 목회자로부터 필요한 물건의 리스트를 받았다. 이번엔 당뇨 치료제인 인슐린과 항생제, 밴드 등 의약품과 양말, 통조림 등 음식과 생필품”이라며 “우크라이나군을 통해 오데사의 병원과 교회에 제공된다”고 말했다.
한교봉과 KWMA는 앞서 지난 10일엔 루마니아 한인선교사협의회와 북동부 시레트 국경에서 1차 구호 사역을 펼쳤다. 국경을 넘어온 난민에게 장갑과 털모자 등 방한용품과 따뜻한 차, 음식 등을 건네며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는 성경 말씀을 우크라이나어로 전하며 위로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현지에 구호 물품도 보내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대책위원장인 한재성 선교사는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온 뒤 인근 국가의 한인 선교사들과 함께 물건을 보내왔다. 한교봉과 KWMA도 이에 동참하기로 하고 1차 구호 사역을 마친 직후 수체아바시 대형마트에서 침낭 매트 위생용품과 음식 등 필요한 물건을 구입했다. 물품은 루마니아 국경 너머 인근 도시인 체르니우치와 중서부 도시인 빈니차로 전달된다. 빈니차는 지난 6일 러시아의 로켓 공격으로 공항이 파괴되는 등 최근 침공이 시작된 곳이다. 한 선교사는 최근 현지인 목회자 사모가 피란 중 체르니우치에서 출산해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물품이 필요하다는 요청도 받았다.
KWMA 박래득 사무국장은 “현지에서 시급하게 요청한 물품이 지체되는 부분이 아쉽지만 현장에서는 다방면의 노력으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천 목사도 “피란민을 위로하는 동시에 여러 이유로 그 땅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