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죽느냐 영원히 살 것이냐’ 말씀에서 싹틔운 스토리 세상의 무대에 씨 뿌리다
입력 2022-04-09 03:10:02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아래 사진)는 ‘뛰어난 관찰자’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봤다. 연약한 인간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지키는지, 음모가 어떻게 출세에 작용하고 어떤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미움 속에 어떻게 사랑이 싹트고 사랑 속에 미움이 싹트는지, 폭력이 어떻게 또 다른 폭력을 낳는지 등에 대해 후대 심리학자들이 인간 심리를 탐구할 때 사례로 삼을 정도로 심리와 행동 관계를 치밀하게 표현했다.
그는 성격 묘사의 수단으로 성서의 원문을 사용하기도 했고, 작품의 주제로 성서적 개념을 사용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라는 성서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했다. 그의 글쓰기의 궁극적 목표는 그리스도를 통한 신과 인간의 화해, 참된 만남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주인공은 자기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가 아니라 알면서 죄악을 저지르는 존재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희곡 ‘맥베스’에서 맥베스는 덩컨 왕을 죽일 때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 비극의 등장인물과 달리 셰익스피어 비극의 등장인물들은 인간의 선택권과 자유의지가 미래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세계에서 행동한다. 그곳은 신의 은총이 작용하고, 회개와 구속의 가능성이 있는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맥베스’는 인간의 타락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맥베스는 야심이 큰 남자가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살인을 저질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맥베스가 덩컨 왕을 살해한 것은 아담의 최초 타락과 비슷하고, 남편을 부추겨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맥베스 부인은 이브와 사탄을 합쳐 놓은 듯한 인물이다. 아담의 죄가 지상에 대한 저주로 이어지듯 맥베스는 스코틀랜드를 암흑의 시대로 몰아넣는다.
반면 미국의 영문학자 피터 라잇하르트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셰익스피어’에서 “맥베스는 어떤 점에서 타락 이야기지만 맬컴이 맥베스에 승리를 거두고 스코틀랜드의 부흥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 구속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맥베스가 권력을 상실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계의 지배자인 사탄에 승리를 거두는 것에 비교하고, 맬컴과 맥더프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인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맥베스’에서 왕후가 죽었다는 전갈을 들은 맥베스의 독백은 시편과 욥기를 떠올리게 한다.
“내일이 오고 오늘이 가고 그리하여 하루하루가 작은 발걸음으로 시간의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 세상의 종말에 도달할 때까지. 어제라는 날은 항상 어리석은 자들이 티끌에 묻혀 죽어가는 길을 비춰준다. 꺼져라, 꺼져라, 잠시 동안의 밝음! 사람의 생애는 흔들리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맥베스’ 5막 5장 중)
셰익스피어는 작품을 통해 ‘영적 재생’을 강조한다. 영적인 재생은 화해와 같은 개념으로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화해를 의미한다. 그의 연극은 비극이든 희극이든 궁극적인 귀결은 화해에 있으며, 기독교적 화해의 개념과 같다. 셰익스피어는 극을 통해 화해의 씨앗을 독자들에게 뿌렸다. 뿌려진 화해의 잠재성은 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심중에 머물러 있다 꽃을 피운다. 인간의 화해가 먼저 이루어진 후 하나님과의 화해가 가능하다(마 6:14~15)는 것을 독자는 알게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 당시 ‘복수’는 가장 일반적인 연극 주제였다. 그러나 당대의 사적인 복수는 신의 주권을 찬탈하는 범죄였다. 정치가 설교가 도덕론자들은 복수를 정죄했다. ‘햄릿’은 비극적 복수를 다루는 데 복수가 해결책이 아니란 것을 말한다.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는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창 4:1~8)을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의 간통과 아버지의 살해 소식은 햄릿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경솔하게 복수를 행동에 옮길 것인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것인지 고민했다. 즉 원죄를 지은 최초의 아담으로 행동할 것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최후의 아담으로 행동할 것인지 그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햄릿은 복수로 인한 정죄를 두려워했다. 햄릿은 죽음을 동경하는 심정을 이따금 독백을 통해 내보인다. 망령에게 살해의 전말을 듣기 전 햄릿은 자살을 고려하지만, 사후 심판이라는 기독교적 명상에 이르러 이를 중단한다.
“아 너무나 욕된 이 몸이 녹고 녹아 이슬이 되어버렸으면 차라리 영존하신 분께서 자살을 금한 계명을 정해 놓지 않으셨더라면…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어느 쪽이 더 고결한 정신일까?…죽는다는 것은 잠드는 것, 아마 잠들면 꿈을 꾸겠지, 아 거기에 장애물이 있다. 이승의 족쇄를 벗어나 죽음이라는 잠이 들었을 때, 그때 어떤 꿈이 찾아올지, 이게 우리를 멈추게 한다. 단검 하나면 스스로 청산할 수 있는데도.”(‘햄릿’ 1막 2장, 3막1장 중)
셰익스피어는 성서와 고전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그는 제네바 성경을 주로 읽었고 감동한 성경구절 옆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겼다. 작품에 성경 구절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
‘햄릿’에서 햄릿이 레어티스와의 검투시합 제의를 받고 불안감을 떨치며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신의 특별한 섭리”라고 말한 것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는 성경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포셔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긍휼은 고요히 내리는 비처럼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다 함께 축복한다”고 말한 대목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에서 비롯된다.
“긍휼은 하나님의 속성인 거요. 따라서 긍휼을 하고 정의를 부드럽게 할 때 지상의 권력은 신의 권력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이지요…누구나 정의만 추구한다면 인간은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거요. 우리는 하나님께 긍휼을 기원하지만, 이 기원은 우리 상호 간에 긍휼을 베풀라고 가르치고 있는 거요.”(‘베니스의 상인’ 4막 1장 중)
셰익스피어는 영국 중부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문법학교에 다니며 논리학, 수사학 등의 교육을 받았으나 가세가 기울면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1582년 8살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해 두 딸과 아들을 얻고 난 후 고향을 떠나 방랑 생활을 했다. 그는 1580년대 말부터 런던에서 생활하며 배우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590년 무렵 극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작가와 극단의 공동경영자로 일했으며 틈틈이 배우 생활까지 하면서 40여편에 이르는 희곡과 시집을 펴냈다.
비평가들은 뛰어난 작품들을 쓴 작가 셰익스피어와 배우 셰익스피어가 동일인물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장갑 제작자의 아들이 작품 속에 보이는 뛰어난 고전 법률, 기술지식을 어떻게 습득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언어 구사력과 천부적인 무대 예술 감각,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력, 풍부한 세상 경험 등이 한데 녹아 어우러진 작품은 주변의 시기심을 존경심으로 차츰 바꿔 놓았다.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이제 모든 시대의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