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이라는 과정에서 나의 감춰진 실체를 깨달았다. 나는 결혼을 두 사람이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결혼해 보니 네 사람이 결혼한 것이었다. 내 속에 분노하는 소년이 있었고, 아내 속에 상처받은 소녀가 있었다. 나는 아내는 사랑할 수 있었지만, 내면의 상처받은 소녀는 사랑할 수 없었다. 아내도 내 속의 분노하는 소년은 사랑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성인이지만 아직 자라지 않은 성인 아이들이 내면에 존재했다. 두 아이가 부딪히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결혼 이후 내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겠다고 서약했던 유일한 여인을 사랑할 수 없는 저 자신을 수용할 수 없었다.
내적 아이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한 결과이고, 치유의 비밀은 조건 없는 사랑(아가페)을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아내와 6개월 동안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만큼 아내는 내게 소중했고 물론 서로가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결혼의 환상은 깨지고 에로스의 한계를 깨닫게 됐다. 에로스는 가치를 느끼는 사랑이기에 그 가치가 떨어지면 급격하게 식어버린다. 성격과 취향과 비전의 미묘한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되어 환상이 깨지고 우리는 부부 갈등 시대에 진입했다. 그런데 부부 싸움을 하던 어느 날, 그토록 사랑을 고백했던 내 입으로 아내가 가장 상처받는 말을 골라서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처럼 나에 대해 비참함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나의 영적 파산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충격적인 낭패감 이후 10여 년 동안 나의 내면을 탐구하며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가정의 회복 없이 사역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피해의식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교만과 자기 비하가 뒤섞인 불안정한 상태에서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계속됐다. 처절한 절규 가운데 주님이 나를 만지셨다. 변화는 나의 실체를 깨달을 때 시작된다. 내가 온전한 부분이 없는 총체적인 환자임을 인정하게 됐다. 감추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 은혜였다. 때로는 가면을 벗고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의 정면대결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이런 자기 성찰을 통해 내면의 치유와 회복이 가속화되었고 아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됐다. 그리고 부부의 회복이 자녀에게까지 확산되는 ‘회복의 연쇄반응’을 경험했다.
작가 이청준의 표현대로 인간은 ‘본래 깨어진 존재’이다. 그래서 본질적인 취약점이 있는 인간 존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완전한 치유도, 완전한 관계도 없다. 사랑은 우정(필레오)이다. 주님의 사랑(아가페) 안에서 부부가 다정한 친구로 서로를 수용해야 한다. 에릭 프롬의 표현대로 하면 ‘상대방의 성장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다. 이렇게 만남의 목표를 설정하면서부터 나는 자유인이 됐다. 이 체험을 통해 시작한 사역이 전인 치유사역이다. 1995년 사랑의 클리닉에서 시작한 인격치유학교가 그 효시다. 이후 전인 치유학교로 20여 년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