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뾰족한 첨탑 그리고 십자가. 그런데 이 교회, 첨탑도 십자가도 없다. 대신 무채색 건물 외벽엔 노란 계단이 사선을 따라 3층 높이 하늘로 올라간다. 계단 끝 파란색 투명창 뒤로 초록색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한마음열린교회다.
붉은 벽돌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빌라촌 입구에 노란색, 파란색과 무채색이 조화를 이루는 교회 건물은 튀지도, 이질적이지도 않았다. 이 교회 담임 윤혜영 목사는 지난 22일 “마을 입구에 십자가 대신 세운 나무는 ‘생명 나무’다. 천국의 계단을 올라 만나는 이 나무는 생명의 하나님, 복음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말했다.
교회에 색을 입힌 사람은 홍익대에서 색채학을 강의한 장형준 전 교수다. 현재 필하우징 대표다. 이날 오후 6시, 노란 계단 끝 생명 나무에 불이 켜졌다. 마치 마을에 복음의 불을 밝히듯.
색채와 발상의 전환이 만든 리모델링
회색빛 석재로 마감한 20년 된 교회 건물은 이렇다 할 특색이 없었고 사용에 불편함도 컸다. 2017년 11월 선교사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겠다며 리모델링을 시작한 이유였다.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결정한 건 시간과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는 리모델링 자체의 장점, 그리고 2011년부터 눈물의 기도가 쌓인 장소의 특별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건축 시공 사업을 하는 윤 목사의 남편 임태성 장로는 리모델링에 반대했다. 건축 구조물을 그대로 둬야 해 생각만큼 리모델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고 시간과 예산도 예상보다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한마음열린교회는 건축 면적 143.94㎥(약 44평) 공간에 변화를 줄 수 없었다. 장 대표는 무표정한 빌라에 표정을 넣기로 했다. 공간을 재구성했고 색채로 이미지를 부여했다.
색채전문가인 장 교수의 특기는 외관부터 그대로 구현됐다. 회색빛 석재와 같은 색상의 징크패널을 덧댔고 그 위로 노란색 ‘천국의 계단’을 만들었다. 계단은 파란 창호 안 초록색 생명 나무로 연결됐다. 색채를 통제하는 무채색과 노란색, 파란색 등 보색이 조화를 이뤘다. 효과는 극적이었다.
윤 목사는 “교회를 방문한 선교사들은 마을로 들어선 순간 계단이 보이고 계단 끝 생명 나무를 보는 순간 위로를 느낀다더라”고 했다. 땅만 보던 사람들이 생명 나무 덕에 하늘을 보기도 했다.
색채의 조화는 지역 주민들을 1층 열린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윤 목사는 “골목에 있는 동네 교회라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싶었다. 1층을 열린 공간으로 구성하고 싶었다”고 했다.
교회 밖 테이블이 놓인 민트색 차광막은 자연스럽게 파란색 창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고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내부 공간으로 이어졌다.
장 대표는 “노란색과 파란색은 보색이라 잘 어우러진다. 두 색을 더하면 초록색인데 민트도 초록색 계열”이라며 “외부와 내부 공간을 색으로 연결해 사람들이 편하게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을을 오가던 주민이 차광막 아래에서 쉬다가 “여긴 어디냐”며 들어오기도 한다. 윤 목사는 “색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지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있었다”면서 “교회에 온 사람 중 믿는 사람은 예배당에서 기도했고, 믿지 않는 사람은 1층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엔 이 공간이 마을 주민을 위한 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공간의 활용도 극대화했다. 먼저 층높이부터 변화를 줬다. 장 대표는 “보의 높이에 맞추다 보니 천정은 가정집 높이인 230㎝로 갑갑했다”며 “힘 받는 보는 두고 천장의 높이를 모두 올려 270㎝로 만들었다”고 했다.
예배당은 지하의 약점을 극복하는 동시에 영적 공간이 되도록 공을 들였다. 장 대표는 “지하는 조명과 색채를 밝게 해야 하는데 경건한 공간이 됐으면 한다는 윤 목사의 요청에 따라 색을 절제했다”고 강조했다.
발상의 전환으로 공간은 극대화했다. 사각형 구조의 공간을 마름모꼴 형태로 활용했다.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사각형 모서리에 강대상을 세웠고 의자도 강대상 각도에 맞춰 사선으로 배열했다.
장 대표는 “70석은 150평 정도의 면적에 나올 수 있는 좌석 수”라고 전했다. 윤 목사는 “리모델링을 고민하는 목사님들이 보러 오셨다가 사선을 활용한 예배당 공간을 보고 탄복한다”고 덧붙였다. 습기를 빼기 위해 수시로 난방을 했고 공기순환기도 설치했다.
리모델링을 고민하는 목회자들을 위해 경험담도 공유했다. 윤 목사는 “교회 건축 현장은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라며 “집들이 붙어 있는 이곳은 소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현장에서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려 했다”고 전했다.
자칫 민원이 접수되면 공사가 지연될 수도 있는데 윤 목사의 노력 덕에 문제없이 예정된 기간에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건축 폐기물 등 예상치 못한 비용에 대해 임 장로는 “5t 트럭 한 대당 60만~70만원인데 서른 대 정도 나왔다”면서 “리모델링은 변수가 많은 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교사 쉼터에서 지역 랜드마크로
윤 목사가 교회 공간 재구성에 나선 결정적인 이유는 선교사 쉼터다. 윤 목사 부부는 2008년 세계 50개국을 돌며 복음을 전하자며 ‘오십나라’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다.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중국 페루 등 20여개국에 선교하러 갔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를 만났다. 그러면서 선교사들에게 위로와 쉼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는 당시 평신도로서 선교 비전을 품던 윤 목사가 국내 목회로 방향을 바꾼 계기가 됐다. 2011년 하람월드미션을 설립해 지금의 자리에 선교사 게스트하우스인 ‘아버지의 집’을 개관했고 백석대 신대원생이던 2016년 4월 한마음열린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편하게 안식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공간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2층 게스트하우스 ‘로뎀나무’는 원룸 2개와 투룸 2개로 구성했다. 윤 목사는 “비자 등 문제로 한국에 단기 방문한 선교사님은 원룸, 장기 투숙을 해야 하는 선교사님은 투룸에 머문다. 최장 3개월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공간은 선교사들에게 위로가 됐다. 윤 목사는 “교단 상관없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선교사역에 지친 선교사님들을 보내주셨다. 이곳에서 휴식하고 예배하면서 선교사님들은 회복되어 다시 사역지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열린 공간과 예배당도 한국교회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윤 목사는 “코로나 이전엔 교회학교 아이들이 두세 명 밖에 안 되는 6개 작은 교회가 이곳에서 연합주일예배를 드렸다”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신혼부부에게 결혼식 공간으로 제공할 계획도 세웠다”고 말했다.
교회를 리모델링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효과도 나타났다. 임 장로는 “주변에 카페들이 많이 생겼다. 한 카페는 라떼로 유명한데 서울에서도 사람들이 올 정도이고 대형백화점에 입점도 했다”며 “교회 건축 하나가 죽어 있던 동네에 활기를 준 셈인데,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목사는 “30일은 우리 교회 창립 6주년”이라며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세상의 결실이 아닌 다른 결실을 기대하며 리모델링을 시키신 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고양=사진 신석현·열린교회 제공
고양=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