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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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민주국가 희망

입력 2022-05-12 03:10:01
1919년 당시 세계의 억압 받는 나라들을 표시한 지도로 짙은 색일수록 억압 정도가 높으며 당시 한국은 가장 억압받는 나라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순 한글로 바꿔 신한민보(1919.6.10)에 게재한 내용. 신을 하나님, 혹은 하느님으로 번역하고 있다.




1882년 조미조약을 맺을 때 조선에 소개된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종교적으로는 기독교를 믿는 국가였다. 미국은 성경에 나타난 참된 기독교를 세우려고 했던 청교도와 민주국가를 세우려는 시민 세력이 세운 나라다. 북미 대륙에 성서적 기독교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세워 온 세계가 이것을 본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미국에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선교사들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미국을 알게 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미국의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는 한반도에도 기독교적인 민주국가를 세우고 싶다는 갈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황제가 있는 대한제국에서 이런 소망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20세기 초 한국인들이 미국 이민을 하게 됐고, 이들은 미국에서 군주국가가 아닌 민주국가를 보게 됐다. 자신들의 조국도 이런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이런 미국 이민들의 꿈이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대한제국이 멸망 당한 다음부터였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직후 미국에 있는 한인들은 이제 더는 대한제국에 미련을 두지 말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미국에 왔던 한인 유학생들은 미국에 대해 연구했다. 이런 미국 한인 기독교인들은 1917년 박용만이 미국 뉴욕의 소약국 동맹회에서 한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승만의 후원으로 이 대회에 참석한 박용만은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민족종교(national religion)로서 간주해 왔고, 우리는 기독교만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최근에는 윌슨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오직 피통치자의 동의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과 ‘모든 국민은 그들이 살아가야 할 정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

박용만은 자신의 조국이 기독교적인 정신에 기초한 민주국가가 되기를 원했다. 이런 미국 독립운동가들의 생각은 상하이의 한인 청년들에게도 그대로 계승됐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미국에 항복한 다음, 상하이 한인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신한청년단은 아시아에서 기독교와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설명하면서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조선을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가 야소교와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며 “한국인들은 ‘야소교를 국교로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무력을 숭상하는 구시대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과 같이 아시아를 이끌어갈 나라가 되지 못하며, 조선은 독립과 동시에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동의에 의해서 통치한다’는 민주 정신에 입각한 국가를 건설해 미국과 함께 인류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런 한국인들의 꿈은 3·1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수립된다는 소식을 들은 이승만에 의해 분명하게 표현됐다. 이승만은 1919년 4월 7일 연합통신과의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동양에 처음으로 예수교국을 건설하겠다”고 밝혔으며, 같은 날 상하이의 현순에게 “조선은 미국의 제도와 동일한 정신 아래 기독교 독립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전보를 보냈다. 이승만은 4월 8일자 크리스챤사이언스모니터지에 “한국은 일치단결하여 민주적 기독교 정부를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은 러시아의 아시아 지역 영토와 일본·중국 사이에 놓인 동방의 천연적인 완충국이므로,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해 극동에서 미국과 연대해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선교를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나라임을 밝혔다.

이런 이승만의 정신은 1919년 4월 10일에 작성된 임시헌장 초안 제 1조, “조선공화국은 북미합중국의 정부를 표방해 민주 정부를 채택함”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초안은 4월 11일 조소앙 등의 수정을 거쳐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함”이라고 확정됐다. 여기에서 말하는 민주 공화제란 미국식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임시헌장 7조에는 “대한민국은 신의 뜻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이며, 선서문에서는 앞으로 이루어질 “신(神)의 국(國) 건설의 기초가 된다”고 해 새로운 나라가 기독교적 기초 위에 세워져 있음을 분명하게 했다.

이승만과 미주 한인들의 꿈은 1919년 4월 15일부터 열린 필라델피아 한인대회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에서 미주 한인들은 윌슨에게 보내는 편지에 “새로 세워지는 정부의 형태는 공화제이며 그 정신은 민주주의이고, 그 지도자들은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면서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기독교 민주주의라는 기본 이념 아래 자유 국민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3·1운동에서 우리 민족 지도자들은 미국과 같이 기독교적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원했다. 그리고 미국인과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아시아의 민주화와 복음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제안했다. 한·미수교 140주년을 맞이해 우리는 3·1운동 당시 우리가 어떤 나라를 꿈꾸었고 어떤 사명을 가졌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박명수 서울신대 명예교수·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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