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봄에 만물이 소생하듯 이 땅 순례의 여정 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피어나리
입력 2022-05-21 03:10:01
‘영시(英詩)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제프리 초서(1340∼1400년·아래 사진)는 프랑스어나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인 영어로 작품을 쓴 첫 번째 작가로 불린다. 그는 근대 영어의 모태가 되는 중세 영어 정착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그는 영국 런던의 부유한 포도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16세 때 얼스터 백작 부인의 사동(使童)으로 출세를 시작했다는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군인, 외교사절과 정부 관료 등의 공직을 두루 지내며 글을 썼다.
그가 언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징주의적이며 전통적인 사랑의 시인으로 출발했다. 첫 작품 ‘공작부인의 책’(1368)은 헨리 4세의 어머니인 랭커스터의 블랑쉬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쓰인 시다. 특이한 점은 당시 관례처럼 프랑스어나 라틴어가 아닌 중세 영어로 쓰였다는 점이다. 이후 그는 대표작 ‘캔터베리 이야기’를 비롯해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 ‘새들의 의회’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시와 산문은 전통적인 중세 문학을 대표했지만, 그의 문학적 매력은 ‘중세 장벽을 뚫고 나오는 현대성’에 있다. 그는 종교인들의 생활과 교회에 침투한 위선을 능숙하게 포착해 냈으며 풍자를 도구 삼아 인간의 약함을 꾸짖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었고 가톨릭의 교리와 실천을 철저히 따랐다. 이들은 죽음과 함께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선한 자는 하늘나라로 가고, 악한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영향으로 중세인들은 천국에 대한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선호했고 자연스럽게 성지순례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
초서의 신앙과 사상이 담긴 대표작 ‘캔터베리 이야기’는 소생하는 봄의 생명력과 순례를 통한 인간의 영적 소생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서문으로 시작된다.
“은은하게 내리는 4월의 비가 3월의 가물었던 땅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갔다. 그 비는 꽃을 피우기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대지의 모든 나뭇가지를 촉촉이 적셨고, 서풍은 감미로운 입김으로 숲과 들판의 연약한 싹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눈을 뜬 채 밤을 지새운 작은 새들은 저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연이 그들의 본능을 일깨웠다. 이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순례하고픈 열망을 느끼고, 신앙심이 깊은 여행자들은 낯선 나라와 머나먼 성지를 찾아가고자 한다.”
짧은 시구이지만 예수의 부활이라는 영적 소생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소생하는 봄과 함께 생명력을 얻게 되는 순서가 창세기에 나타나는 창조의 순서와도 일치한다. 초서가 말하는 ‘순례’는 최후의 심판으로 가는 인생 여정을 상징한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캔터베리 대성당을 순례하기 위해 모인 29명의 순례자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설화문학의 모든 장르가 한 권에 집약된 캔터베리 이야기는 1387년에 집필을 시작해 1400년 초서의 사망으로 중단, 24편의 이야기로 미완성인 채 끝났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 나열이 아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이야기 속에 반영시키는 근대적 전개법이 사용됐다. 또 다분히 종교적 의도가 담겨있다. 초서는 이 작품을 필생의 대작으로 생각하고 만년을 오직 여기에 바쳤다.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제일 길고 지루한 ‘본당신부의 이야기’ 중 ‘7대 죄 강론’은 예레미야 6장 16절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안을 얻으리라”에 관한 것이다. 영문학자들은 초서가 평생을 착실한 기독교인으로 일관되게 살았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교회와 성직자의 타락을 꾸짖고 풍자한 것과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산 것이 일관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흔히 종교개혁 이전엔 신학적 논의가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 같은데 작품을 보면 교리에 관한 논의들이 민중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삼위일체설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두 번째 수녀 이야기’에 나오는 성녀 세실리아는 이렇게 이해한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능력이 있지요. 즉 기억력 상상력 추리력이 그것이지요. 이처럼 한 분의 신 안에 세 사람이 결합해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성격의 표리부동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가 세상의 것과 영적인 것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예를 들면 ‘배스의 여인이야기’에서 배스 부인에게 성지순례는 외형적인 믿음의 표시이자 과시욕에서 연유한 여행이었다. ‘면죄사의 이야기’에서 면죄부 판매자는 이런 대중의 관심을 이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엔 사회적 지위가 높은 기사와 착하고 가난한 선비, 성인 같은 본당 신부, 무식한 농부, 부패한 수도승, 수녀원장, 장사꾼, 의사, 변호사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중세 영국 사회의 구석구석을 한눈에 보여주고 사회의 부정부패와 타락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여러 인물을 통해 볼 수 있는 사회비판 요소가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다. 일생을 지배계급에 봉사하고 그 비호를 받으며 살았지만 그 속에 도사린 부패와 부정, 부조리를 유머가 가득한 필치로 풍자했다. 그는 인류의 악덕과 어리석음을 상대하는 제일 나은 방법은 혐오가 아닌 웃음이라 믿었다.
인간 본성에 대해 애정 어린 이해를 하고 있던 초서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그리스도교적 미덕을 전개했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마지막 문단은 인생 전반을 돌아보는 초서의 신앙고백으로 이해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작은 나의 글 중에 만약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들어 있다면 모든 지혜와 선의 근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리길 바랍니다. 성경에도 쓰여 있듯이 ‘여기 쓰인 모든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 쓰인 것’(롬 15:4)이며 이 또한 나의 의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내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나의 죄를 슬퍼하며 나의 구원을 위해 정진할 수 있도록 나에게 은총을 내려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자신의 심장의 소중한 피로써 우리를 구하여 주신 그분의 자애로운 은혜 안에서 진정한 회개와 고해의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심판의 날에 내가 구원받을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신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세세토록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아멘.”
초서에게 인생이란 하나님께로 향하는 순례의 길이었다. 런던의 타바라 여인숙을 떠나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동행하며 캔터베리로 가는 순례의 길은 하나님나라로 가기 위한 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