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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발간된 세번째 단편 성경 ‘맛대복음’ 실물 공개

입력 2022-05-24 03:05:01

 
심한보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장이 23일 서울 은평구 연구원 인근에서 공개한 '예수셩교셩셔맛대복음' 실물 가운데, 당시 위장을 위해 농사법이 서술된 부분. 신석현 포토그래퍼






농사 책으로 위장해 만주와 조선의 국경을 넘었다. 19세기 조선의 쇄국정책 당시 소지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금서(禁書)였기 때문이다. 구한말 대한제국의 몰락과 일제 강점기, 6·25전쟁을 거치며 빼앗기고 불태우고 버려진 한국교회 태동기 한글성경 마태복음 가운데 딱 한 권이 한문 낙서가 담겨 있는 위장 형태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스코틀랜드연합장로교회 파송으로 만주에서 활동한 존 로스(1842~1915) 선교사가 1884년 3월 중국 선양에서 발간해 오늘날까지 전해진 ‘예수셩교셩셔맛대복음(사진)’ 이야기다.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 심한보(75) 원장은 23일 국민일보에 자신이 소장한 ‘맛대복음’ 실물을 공개했다. 맛대복음 가운데 ‘ㅐ’의 원래 표기는 아래 아 ‘·’에 ‘ㅣ’가 더해진 형태로 마태복음을 지칭한다. 맛대복음은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에 이어 요한복음을 거쳐 1884년 3월, 세 번째로 발간된 단편 성경인 일명 ‘쪽복음’이다. 이어 마가복음인 ‘예수셩교셩셔말코복음’이 1884년, 신약성서 전체가 담긴 ‘예수셩교젼셔’가 1887년 각각 한글로 번역돼 발간된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400여년간 잠자고 있던 한글을 전면 채용해 띄어쓰기까지 처음 적용한 최초의 한글전용 서적이 바로 성경이었다.

심 원장이 소장한 맛대복음은 동일 판본이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에 각각 1부씩 보관돼 있다. 로스 선교사는 당시 영국성서공회의 후원으로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등 한국 최초 그리스도인을 고용해 한글성경을 제작했기에 본국에 관련 판본을 보내 결과물을 보고했다. 국내엔 심 원장의 판본 외에 아직 보고된 맛대복음이 없으며, 대한성서공회 역시 6·25 때 대형 화재 등으로 소장한 성서를 소실해 이 판본은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맛대복음은 종이를 반절 접어 접힌 쪽의 반대편을 끈으로 묶었다. 끈은 지금의 서양에서 온 실이 아닌 한지를 꼬아 만든 19세기 형태다. 이렇게 제작하면 접힌 종이 안쪽 면 내용을 볼 수가 없다. 로스 선교사는 이렇게 접힌 종이 안쪽에 '압라함의자손다빗의후예 예수키스토의족보라(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로 시작하는 마태복음을 인쇄했다. 접힌 쪽 겉면에는 '傷田家刈麥(상전가예맥)'으로 시작하는 오언절구 한시가 적혀 있다. 훼손된 밭에서 보리를 밸 때를 말하는 농사법 등을 언급한 내용으로 보인다. 관헌의 눈을 피해 농사 책으로 위장한 맛대복음은 국경을 넘은 뒤 끈을 풀어 접힌 종이 안쪽의 성경을 밖으로 나오게 뒤집어서 다시 제본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을 지낸 이덕주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국민일보의 요청으로 자문에 응했다. 이 전 교수는 "한글성경이 처음으로 번역돼 복음을 전한 의미 이외에 식자공에서 권서인으로 거듭난 김청송의 영혼이 담긴 당시 최고 수준의 납 활자로 인쇄된 성경"이라며 "글씨체가 매우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이 전 교수의 안내로 맛대복음 맨 뒤편 '강명편'을 살폈다. 강명편은 단어 설명에 해당하며 조선인에게 처음 소개하는 '밥팀례'(세례) '사밧일'(주일) '넘넌졀'(유월절)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할례'는 '예수젼에유대국교에드난법인데시조압라함이셔운배라'(유대교에 입문하는 법인데 시조 아브라함이 세운 것이다), '예루사램'은 '유대국셔울이라'(이스라엘의 수도이다) 등으로 해설하고 있다.

심 원장(사진)은 지금은 별세한 박의영 전 부산 경성대 교목실장을 통해 1991년 이 성경을 입수했으며, 박 목사는 학창시절이던 한국전쟁 이후 부산 보수동 고서점에서 이 책을 구했다고 증언했다. 만주 국경을 넘어 서북 지방에서 읽히던 성경이 6·25 전란을 피해 부산으로까지 흘러온 것으로 추정된다.

심 원장은 중앙대 한국학연구소 사무국장 출신으로 '기독신보' '미션필드' '신학세계' '신학지남' '활천' 등 기독교 문헌 수천 권을 묶어낸 주인공이다. 한국교회사 연구자 중에서 그에게 사료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심 원장은 맛대복음 유물의 기증 의사를 밝혔다. 그는 "박물관에서 더욱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다채로운 고증 작업이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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