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1660~1731·아래 사진)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 ‘표류기’ 하면 떠오를 정도로 지금까지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 영감을 주는 고전이다.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를 폭풍우로 배가 난파돼 무인도에 표류한 이후 28년 넘게 지내다 구출된 사람의 이야기 정도로 이해한다면 오해다. 소설은 고립무원이 된 한 인간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묘사한 ‘영적 표류기’이다.
사실주의적 묘사로 영국 근대문학 효시로 평가받는 이 소설은 주인공의 28년에 걸친 무인도 생활 속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디포는 일생을 통해 깨달은 두 가지 진리, 즉 어떤 실패에 처해도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누릴 수 있다는 점과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흥미진진한 서사구조를 통해 풀어냈다.
영적 표류기
디포는 역경을 극복하는 용기의 원천이 모두 성경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고독한 환경 속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조했고,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고독한 환경에서 오는 부자유와 고립된 생활에서 오는 결핍을 충분히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작품에 담았다.
무인도의 삶을 지탱해준 희망과 위로의 언어는 성경에 쓰여 있었다. 주인공은 우연히 펼쳐 든 성서에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라는 말씀을 읽는다. 이 구절의 첫 부분이 그가 처한 경우와 아주 잘 들어맞았기 때문에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하나님이 그곳에서 능히 자신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마음이 무척 우울했던 그는 다시 성경을 펼쳐 “나는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는 구절을 읽는다. 그 순간부터 그는 버림받고 고독한 상태에서 얻는 행복이 이 세상 어떤 특정한 신분으로도 얻을 수 없는 행복이란 것을 확신했다.
“어느 날 아침 슬픔에 북받쳐 성경을 폈을 때 다음 구절이 나왔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나는 이 구절이 하나님이 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신과 인간에게서 버림받은 내 처지를 슬퍼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구절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나에게 다가왔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저버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나쁜 결과가 될 수 있으며 문제가 되겠는가? 반대로 내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잃는다면 그에 비교할 손실이 있는가?”(‘로빈슨 크루소’ 중)
‘구원한다’는 말은 처음엔 그에게 공허한 소리로 들렸다. 그가 처한 환경에서 구원이란 너무나 멀리 있고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먹을 고기를 약속받았을 때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하고 의심한 것처럼 그 역시 ‘하나님이 이곳에서 나를 구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고통에서 구원받는 것보다 훨씬 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공의 이야기는 디포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들린다.
“내 과거를 끔찍한 심정으로 돌아보고 내가 저지른 죄들이 끔찍한 죄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내 영혼은 다른 무엇보다도 평온한 마음을 짓누르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의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는 거의 하지 않았다. 죄의 짐에서 벗어나는 것에 비하면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로빈슨 크루소’ 중)
디포는 무신앙의 인물로 등장한 주인공이 신앙과 소망을 갖고 성실하게 노동하면서 인종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차츰 불굴의 신앙인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엔 또 다른 시선이 담겨있다. 그것은 한 시대를 혁명적 사고로 해석하고 새롭게 정립하려 했던 혁명가의 시선이다. 당시 영국은 왕의 권위를 벗어나려는 중산층의 움직임이 점점 드세게 일어나는 시점이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비판하고,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통해 시민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당시 영국에 청교도운동 실패 후 분리파 청교도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뉴잉글랜드로 건너갔고, 온건파 다수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시민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신세계를 꿈꾸었고, 왕이 아닌 시민이 다스리는 민주국가를 만들기 원했다. 시민정신을 주도한 사람들은 비국교도들이었으며, 그 핵심에는 칼뱅의 종교개혁 영향으로 형성된 장로교회가 있었다. 대니엘 디포는 장로교도로서, 시민정신을 주도한 핵심이었다. 작품은 은연중에 국교와 사제 중심의 교회 제도를 비판한다. 디포가 설정한 무인도는 사람이 없는 섬의 개념을 넘어서 국가의 간섭 없이 스스로 주인으로 살아가는 국가였다.
저널리스트에서 소설가로
어쩌면 디포는 로빈슨 크루소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국교도 신자가 아니면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그는 장로교 목사가 되려 했던 애초의 꿈을 수정해 상인을 거쳐 정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파벌 경쟁이 격렬했던 시대에 살면서 글과 행동으로 심한 당파싸움과 종교 분쟁을 완화하려 했다. 정치 풍자시 ‘순수한 영국인’(1701)을 발표해 당시 국왕 윌리엄 3세에 대한 국민의 편견에 반대했다. 또 비국교도 탄압의 어리석음을 우회적으로 조롱하며 비판한 ‘비국교도 대책의 지름길’(1702)을 내놓아 벌금과 투옥 등의 필화사건을 겪었다.
그에 대한 민중의 지지는 대단했다. 그는 수감 중에 정치 신문 ‘리뷰’(1704)를 창간했다. 결국, 권력자들의 미움을 산 그는 악명 높은 뉴게이트 교도소에 들어가야 했다. 번창하던 사업도 풍비박산 나고, 가족들도 굶어 죽을 정도의 빈곤 상태에 빠진다. 다행히 이 무렵 발표한 ‘로빈슨 크루소’(1719)는 무명작가였던 그를 순식간에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이후 디포는 ‘몰 플랜더스’ ‘역병의 해 일지’ ‘잭 대령’ ‘록 사나’ 등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대니얼 디포의 삶은 마치 항해하는 배와 같았다. 순탄하고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시간도 있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으로 파선해 죽음에 직면하기도 했다. 성공과 실패, 전진과 후퇴를 경험했다. 이러한 삶의 여정은 고독한 무인도에 ‘표류하는 존재’와 다르지 않았다. 무인도의 경험을 통해 깊은 신앙으로 나아갔던 로빈슨 크루소는 바로 작가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