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직전 찜통더위와 함께 이슬비가 내리던 18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 일대에서 민중신학자이자 전 한신대 교수였던 안병무 선생 탄생 100년을 기리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사회적 협동조합 길목(이사장 홍영진)은 1922년 6월 23일 태어난 안 선생을 기리기 위해 ‘안병무 100년, 그의 길을 따라 걷는다’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안병무 평전’을 집필한 김남일 작가의 해설과 함께 서울 시내 곳곳에 남겨진 안 선생의 발자취를 걸으며 그를 기억했다. 이 자리에는 홍창의 서울대 명예교수의 아들 홍영진 길목 이사장을 비롯해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목사,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실장 등 22명이 참석했다. 걷기 행사는 서울 중구 일본군 위안부기억의터에서 시작해 옛 중앙정보부 대공분실, 남산 향린원 터, 명동성당을 거쳐 향린교회 앞에서 마무리됐다.
김 작가는 위안부기억의터에서 “안 선생은 늘 열린 마음으로 대화했던 분이며,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중심만 본 게 아니라 변두리가 잘돼야 중심도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했다. 이어진 옛 중앙정보부 터에서는 안 선생의 중앙정보부 투옥의 역사가 회고됐다. 안 선생은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힘쓰다 1967년 동백림사건과 76년 3·1민주구국선언으로 두 번 투옥됐다.
향린원 터에서는 안 선생의 신앙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전쟁 폐허 속에서 홍 교수를 비롯한 신앙 동지들과 예수 공동체를 꿈꾸며 53년 남산 향린원 자리에 평신도 중심의 향린교회를 설립했다. 김 작가는 “안 선생은 사회학을 전공하며 예수님을 연구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씀의 신학’이 아니라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는 사건의 신학’을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홍 이사장은 “이곳에서 10여년의 유년 시절을 보내며 안 선생을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덧붙이며 안 선생과의 추억을 소개했다.
명동성당과 향린교회 앞에서는 안 선생의 공동체 의식이 강조됐다. 김 작가는 “보통 1과 99가 의견이 다르면 100을 위해 1이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안 선생은 1과 99 모두 동등하게 같다고 생각한 분”이라며 “이런 생각이 소수자와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어 “안 선생은 민주화운동으로 투옥과 해직을 거듭하고 악화한 건강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진정한 얼굴을 찾고자 했고 그의 노력은 96년 10월 19일 세상을 뜨는 날까지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걷기 행사는 향린교회에서 마무리했다. 김 작가는 “안 선생을 다시 추억하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행사에 함께한 김 목사는 “안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는 예수님의 얼굴을 한번 제대로 그려보려고 하는 것인 만큼 신앙인으로서 늘 예수님의 얼굴을 바로 그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