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은나라 주왕의 상아 젓가락에서 파멸을 보았습니다. 상아 젓가락은 흙 그릇과 어울리지 않으니 옥 그릇을 쓰게 되고, 옥 그릇은 푸성귀와 어울리지 않으니 고기 요리를 먹게 되고, 산해진미는 단출한 초가와 맞지 않으니 구중궁궐 누각에서 먹게 되고, 방탕한 생활은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기자의 말대로 주왕은 누각을 짓고 술지게미로 언덕을 쌓고 술로 못을 채우고 주색에 빠져 엽기적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기자가 예언한 지 5년 만에 주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어찌 주왕뿐이겠습니까. 한 인간의 파멸도 그렇거니와 한 민족의 파멸도 그 근원을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란 남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타락은 ‘탐심’에서 시작됐지요.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의 파멸도 ‘욕심’에서 시작했습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계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 1:14~15, 새번역) 어떤 일의 끝이 궁금할 때는 먼저 그 시작을 봐야 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