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지방 도시에 ‘선교 스테이션’을 세웠다. 지역 선교의 거점이 되는 곳이 선교 스테이션이다. 선교사들은 이곳에 전도와 의료, 교육 시설은 물론 주거 공간까지 세워 주민과 만났다. 말 그대로 ‘선교 사랑방’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인근 도시로 선교를 확장해 나갔다. 전국 각지에 조성된 선교 스테이션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류영모 목사)이 지난 5일부터 사흘 동안 ‘우리에게 근대문화는 어떻게 왔을까’를 주제로 진행한 기독교 문화유산 탐방 프로그램에도 전주와 광주, 대구 선교 스테이션 방문이 포함돼 있었다.
전주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 개관
미국남장로교 선교부는 1892년 조선에 7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들은 전주 완산구 일대에 서문교회와 예수병원, 신흥·기전학교를 세웠다. 조선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시설이 우리나라의 근대를 열었다. 또 조선을 현대와 연결하는 가교 역할도 했다.
전주의 선교 역사를 망라한 전주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관장 최원탁 목사)이 최근 개관했다. 순례팀은 지난 6일 전주 완산구에 있는 기념관을 견학했다. 연면적 2758㎡(약 835평)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기념관에는 미국남장로교의 전주선교 역사가 고스란히 소개돼 있다.
3층의 구바울 기념 의학박물관에는 2009년 문화재청이 근대 문화유산 의료 분야 목록에 올린 마티 잉골드의 진료 사진(1898) 방광 내시경과 요도 확장기(1930) 안과 수술 기구(1948) 종양 심부 치료 기록지(1955) 등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공휴일과 주일엔 휴관한다.
류영모 목사는 “미국남장로교는 전주를 호남 선교의 거점으로 정하고, 목사와 의사 교사를 통해 이른바 ‘삼사 선교’를 시작했다. 군산과 목포, 광주 선교 스테이션 설립을 통해 사역을 확장했다”면서 “선교사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를 돌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했다”고 소개했다.
서서평 선교사, 이곳에 잠들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는 호남신학대를 중심으로 광주기독병원과 선교사 묘원·사택 등이 잘 보존돼 있다. 서서평(엘리자베스 쉐핑) 선교사의 묘지도 광주 양림 선교사 묘원에 있다. 온전한 조선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서서평 선교사는 ‘나환자의 어머니’로 불리며 14명의 고아를 입양했고 20여명의 과부를 거뒀다.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시민들은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그의 장례를 치렀다. 이 묘원에는 유진벨 목사 부부와 의료 선교사인 오웬과 브란트 등 22명의 선교사 묘를 비롯해 모두 45명이 묻혀 있다.
또 ‘양림 역사문화마을’ 안에는 정자인 오웬기념각과 1925년 나환자 치료를 위해 전문 치료소를 세운 우월순(로버트 윌슨) 선교사 사택, 유진벨기념관 등 기독 문화유산이 있다. 이 중 보존 상태가 뛰어난 우월순 선교사 사택은 영화 촬영 명소로 꼽힌다. 그는 묘원 아래 선교사 주택가에 회색 벽돌로 2층 양옥집을 지었다. 양림동 일대는 둘레길이 조성될 정도로 걷기 좋다. 숲이 품고 있는 여러 유적을 찾아보는 재미도 크다.
아름다운 동산, 청라언덕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가곡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은 대구 스테이션을 말한다. 이 스테이션에 푸른 담쟁이덩굴이라는 뜻의 ‘청라(靑蘿)’라는 별칭이 붙은 건 무더웠던 대구에 살던 선교사들이 사택의 실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담쟁이덩굴을 심어 건물을 감쌌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과거 ‘똥산’으로 불릴 정도로 버려진 이 언덕 위에 스테이션을 꾸리고 동산으로 가꿨다.
현재 이곳에는 대구제일교회와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3·1만세운동 유적지 등이 모여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염원한 대구 시민들이 만세를 외치며 쏟아져 나왔던 ‘90계단’을 따라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대구 근대화 거리로 갈 수 있다. 이곳에는 ‘대구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과 ‘교남YMCA 건물’ 등 문화유산이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
전주·광주·대구=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