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공황으로 세계 모든 나라가 신음하고 있던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반 조선에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악(惡)카페’의 유행이었다. 경성역에 있던 부인 대합실을 없애고 웨이트리스가 있는 끽다점을 차렸을 정도였다. 철도국은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편안한 이동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처사였다. 모든 것을 돈으로 연결하려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던 자본주의 초기 조선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당초 철도국 발표에서는 여급을 두거나 음악을 써서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일은 안 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듬해인 6월 개업 때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웨이트리스도 미인으로 4인을 두어 피곤한 여객에게 위안을 주는 곳”으로 바뀌었다. 당국인 철도국이 오로지 경제적 이유로 부인용 휴게소를 끽다점으로 바꾸고, 여급을 고용하고,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일에 앞장서는 판국이었다.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빙자해 공기업의 목적을 망각한 일이었다. 유명했던 서울역 2층 양식당 그릴의 출범이었다.
끽다점이나 카페에서 차나 커피만을 마시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문제는 술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이 일본 경찰이나 관료들이 술판을 벌이고 웨이트리스를 희롱하는 사회에서 대중의 문란함을 탓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유행하던 단어가 ‘악카페’였다. 술과 함께 이른바 ‘에로서비스’를 위주로 하는 퇴폐적 카페였다. 1931년 10월 17일 매일신보를 보면 경성 영락정(현 저동)에 있는 카페 ‘미쯔와’는 “흐리컴컴한 광선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호출돼 과료처분을 받았다. 과료처분이 다였다. 조선일보 1931년 9월 25일자 기사 표현대로 “환락의 짜스(필자: 째즈)는 밤의 경성을 음탕하게 어즈러히” 만들고 있었다.
화가이며 언론인이었던 한 여성은 1932년 신년을 맞아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카페는 조선을 에로와 알코올로 죽이려 하는 독살범이라고 질타했다. “마작당은 조선을 시간으로 죽이랴 하는 독살범이요, 카페는 조선을 에로와 알코올로서 죽이랴 하는… .” 이 여성의 예상대로 조선은 죽어갔고, 청년들은 전쟁터로 끌려갔다. 이태원 어두운 골목에서 벌어진 무고한 청년들의 참사 앞에서 90년 전 경제 대공황 속 조선과 지금의 경제 위기 속 대한민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떠올린다. 경제는 어렵고, 청년들은 불안하다. 위로가 필요한 사회다. 도덕적 긴장감이 필요한 사회다.
당시의 악카페나 지금의 고급 술집을 이용하는 고객은 하루하루의 삶이 어려운 서민이 아니라 군림하는 엘리트들이다. 일반 대중의 알코올 탐닉은 자신과 주변의 가족 정도를 망가뜨리지만 엘리트 계층의 알코올 탐닉은 사회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알코올이 만드는 도덕적 무감각증은 하향 전염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얘기하기조차 부끄러운 사회다. 무고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이길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leegs@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