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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3년전 성탄 새벽에 만난 여린 생명, 베이비박스 사역 탄생시켰다

입력 2022-11-02 03:10:01
이종락 목사(왼쪽 두번째)가 미국 생명보호(Pro-Life) 단체인 ‘라이브 액션’으로부터 ‘생명상’을 수상한 뒤 현지 관계자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고 있는 모습.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제공


이종락 목사가 베이비박스에 놓여졌던 아기를 돌보고 있다.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제공




얼마 전, 미국 최대 생명옹호 단체인 ‘라이브액션’이라는 단체에서 ‘올해의 생명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역들이 시작되게 된 일들을 생각하며 많은 감회에 잠겼다.

지금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크리스마스’란 단어가 조금씩 다가올 즈음이면 나는 그 날 상황들이 늘 떠오르곤 한다. 이 모든 일들은 2009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생긴 일들로 시작되었다.

춥고 어둡던 새벽이었다. 전혀 예상도 할 수 없던 시간, 누구도 예상할 수 없던 공간에서 아기 울음 소리를 듣게 되었다.

굴비 상자 안에 담겨져 있던 아기 천사. 누가 그 시간 그 곳에 새 생명의 탄생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이 험한 세상에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기가 빈 방이 없어 초라한 곳에 남겨져 있었다.

한 시가 급했다. 누구라도 그리했겠지만, 우리는 아이를 받아들였고 아이가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새 생명이 우리와 함께 있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빛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아이들이 우리에게 빛이었다. 이후 그 빛은 우리의 모든 사역을 여기까지 이르게 했다.

내가 이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아기를 따라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고백할 수 있겠다. 이 모든 일들이 2009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시작되었다.

어쩌면 성경 속 예수님 탄생의 모습과 당시의 우리 상황이 그렇게 겹치는지. 그렇기에 내게 크리스마스는 그 이벤트를 축하하고, 즐기는 날과는 다르다. 내게 크리스마스는 성경 이야기 그 자체이다.

임신했던 마리아는 주변의 핍박과 위험 속에도 아이를 지키고자 했고 결국 출산해 지켰다. 환영받지 못하던 아기 예수님은 작은 방 하나를 구하지 못하셨지만 예상하지도 못했던 시간에 기대할 수 없는 곳으로 임하셨던 아기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을 보내 영접하도록 준비해 주셨다. 그들은 새 생명을 보았다.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0~21)

상상도 못할 이유로 임신했지만, 아기를 포기할 수 없어 출산한 엄마와 이런 저런 상황으로 누일 수 있는 작은 방 하나를 구하지 못했던 아기. 예상하지도 못했던 시간에 기대할 수 없는 곳으로 남겨졌던 아기 천사. 그러함에도 지켜주셨던 하나님과 아기의 탄생을 환영하고자 멀리서 찾아와 주셨던 봉사자들과 후원자들. 나는 매년 이맘 때면 성경 속 성탄절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하고 있다.

시작은 비밀스럽고 미약한 것 같았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했던 예수님의 사역처럼 시작은 작고 보잘 것 없던 우리 사역은 지금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지금의 베이비박스 사역은 조금씩 더 커지고 있다. 아기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넘어 부모가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상담하고 지원하여 그 비율을 높여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와 벤치마킹을 하는 ‘한국형 베이비박스’로 발전하고 있다.

작고 비밀스런 공간, 구유를 통해 하나님의 따뜻한 보호 아래 예수님이 지켜지셨던 것처럼 우리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아기들이 지켜지도록 하고 있다.

나라의 지원을 조금도 받지 않고 사역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 사역이 끊기지 않고 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일 뿐이다. 2000년 전 예비하신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을 보내셨던 것처럼 지금도 예비하신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을 보내주시고 계신다. 이 모든 사역들이 주의 은혜요 주님의 일하심이라 굳게 믿는다.

가을을 넘어 겨울이 오고 있다. 곧 거리에는 캐롤이 들려올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의 주인은 산타가 된 듯 하고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의 날이 된 듯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님과의 만남을 다시 기억하는 날이며 적어도 내게는 지금까지 써내려가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우심에 감격하는 날이다. 그 감회가 매년 새롭고,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심히 족할 뿐이다.

세상은 여전히 전쟁으로, 경제 문제,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시끄럽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 어두운 밤. 그러함에도 아기 예수님과 주변 사람들은 평안 속에 잠을 잘 수 있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밖은 시끄러우나 베이비박스의 아기들은 오늘도 고요한 밤 평안 속에서 잠을 이룬다. 2000년 전 아기 예수님을 지켜주기 위해 일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이들 생명까지 지키시기 위해 일하시는 것을 매일 매일 보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나는 그 하나님의 하신 놀라운 일들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종락 목사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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