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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유이상 (16) 펄프 몰드 후발주자 풍년그린텍, 계란판 시장 업계 1위로

입력 2022-12-07 03:10:01
유이상 풍년그린텍 대표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계란판 공장에서 제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안산=신석현 포토그래퍼


깨지기 쉬운 아주 작은 물품을 깨지지 않도록 대량으로 보관하거나 운송할 때 완충재의 역할은 더 분명해진다. 풍년그린텍이 만드는 계란판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만 해도 시장에서 계란을 팔 때는 볏짚으로 만든 줄계란으로 유통됐다. 하지만 수백만 개의 계란을 운송해야 하는 이 시대에 줄계란이 유통될 수는 없다. 전국 양계 농가에서 나오는 계란을 소비자에게 안전하게 배송하려면 계란이 깨지지 않도록 안전한 방어막이 필요하다. 그 방어막이 계란판이다.

풍년그린텍은 한 달에 많게는 계란판 3500만장 이상을 생산한다. 생산된 계란판은 물 99%에 종이 1%를 섞어 곱게 갈아 만든 펄프 몰드(pulp mold)로 만들어진다. 1997년 당시 계란판은 모두 플라스틱이었고 이미 상당한 최신 시설과 규모를 자랑하는 큰 회사들이 펄프 몰드 계란판 시장에 진출해 있었다. 풍년그린텍은 1년 정도 후발주자였지만 지금은 계란판 시장의 업계 1위 자리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20년이 흐르는 동안 꽃길만 펼쳐지지는 않았다. 돌밭, 가시밭길이 수시로 튀어나와 한시도 긴장을 풀어 본 적이 없다. 펄프 몰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진단한 건 우리 회사만이 아니었다. 몇몇 회사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설비를 갖추고 많은 인력을 고용해 펄프 몰드로 생산하는 계란판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수백억 원씩 투자한 만큼 계란판으로 수익을 내려면 계란판 단가를 낮출 수가 없었다. 고가의 기계에 대한 감가상각도 부담이었다. 무리하게 투자한 기업들은 사방에서 자금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인건비도, 투자 상환 시점이 도래하는 것도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풍년그린텍은 기계를 자체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계와 설비에 대한 투자 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게다가 계란판과 병행하던 박스 제작 사업에서 남은 종이를 계란판 제작에 사용할 수 있어 원가 절감도 가능했다. 은행 대출로 고가의 기계를 구입한 회사들은 하나씩 도산 위기에 몰렸고, 파산한 회사가 갖고 있던 고가의 기계들이 고철값에 나왔다. 아무리 성능 좋은 기계 설비라 해도 정말 필요한 곳에 가지 않으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제빵사에겐 오븐이 필요한 기계지만, 시루떡을 파는 가게 입장에선 쓸모없는 기계인 것처럼 말이다. 풍년그린텍 입장에선 헐값에 시장에 나온 펄프 몰드 기계를 저렴하게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2003~2004년엔 다른 공장에서 쓰던 기계를 10대 이상 구입했다. 당시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제작된 검증되지 않은 기계들도 샀는데 가동해보면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는 쓸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우리 회사의 생산 전략과 용도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방식이 전혀 다른 타입의 중고 펄프 몰드 기계를 다 뜯어서 새로 개조해보고 재가동하는 피땀 어린 과정을 통해 풍년그린텍은 기회비용을 훨씬 초과하고도 남을 실력과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주님의 기업과 일꾼들에게 하나님이 지혜와 용기를 주신 것 같다. 하나님은 순전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우리 모습을 지금도 보고 계신다고 믿는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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