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여인과 자폐한나씨의 행복한 브이로그.’ 유튜브 채널 ‘자폐 한나씨와 통영여인’의 소개 문구다. 이 채널은 자폐증이 있는 김한나(27)씨의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다. 2018년 개설돼 지금까지 채널에 올라온 영상 개수는 500여개에 달한다. 구독자는 2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나씨의 아버지 김진성(55) 목사(경남 통영교회)와 가족들은 든든한 지원자다. 어머니 김소영(55) 사모는 영상 촬영부터 편집, 채널 운영까지 도맡고 있다.
한나씨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김 사모는 자신의 딸이 얼마나 똑똑한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 17일 통영교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 사모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게 된 이유를 밝혔다.
“(발달장애인은) 혼자 밥도 못 먹고, 화장실 뒤처리도 못 하고, 글씨도 못 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실제 발달장애인의 삶은 어떤지 보여주자 했죠. 한나랑 있으면 재밌을 때가 많아요. 순간에 말하고 행동하는 게 웃길 때가 있어요.”(웃음)
처음부터 구독자의 반응이 우호적이었던 건 아니다. 한나씨와 김 사모를 공격하고 조롱하는 댓글이 달리기 일쑤였다. ‘장애 있는 자식 데리고 장사하냐’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냐’ 등의 악플이 이어졌다. 하지만 비난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다. 김 사모는 “처음부터 한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했다”면서 “더 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애인 인식 개선 통로와 전도의 장이 되기까지
실제로 만난 한나씨는 김 사모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기자를 처음 만나자마자 해맑은 표정으로 건넨 말은 “안녕, 이름이 뭐야”였다.
그가 자폐 판정을 받은 건 3세 8개월이 되던 해였다. 김 사모는 어린 딸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표정이 없는 등 또래와 사뭇 다른 모습에 서둘러 병원에 데려갔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자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 사모의 인생은 이때를 기점으로 180도 달라졌다. 딸을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나씨 채널을 운영하게 된 것도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서였다. 김 사모는 “장애인이라는 편견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보일 때도 있다”며 “유튜브를 통해 비장애인들이 한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다. 한나씨를 포함한 발달장애인들이 돌발행동을 해도 비장애인들이 당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장애인들도 발달장애인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목사도 2010년 통영교회에 오기 전부터 새로운 목회지에 부임할 때면 “내 딸은 장애가 있어요”라는 말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김 목사는 “딸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목회에 소홀하다는 얘기를 들을까 봐 더 열심히 했다”고 털어놨다. 이는 그의 목회철학과 직결된다. “사실 저는 목사이기 이전에 장애가 있는 아이의 아버지잖아요. 가정을 돌보는 만큼 성도들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자폐 한나씨와 통영여인’ 채널은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희망과 위로의 장이 됐다. 비슷한 환경에 있는 이들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보듬어 주는 공간인 동시에 전도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구독자들은 한나씨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종종 통영을 방문한다. 최근 30대 여성 구독자는 한나씨를 만나기 위해 강원도 춘천에서 방문했다. 올해 초엔 한 가정이 통영을 찾았다. 특수학교 교사였던 딸이 급성 백혈병 투병 중 한나씨 채널을 열심히 시청했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딸을 떠올리며 통영교회를 방문했다고도 했다. 오랫동안 가나안 성도였다고 소개한 고인의 아버지가 신앙을 회복하고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됐다는 간증도 이어졌다.
김 목사는 “주변에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둔 지인 목사들도 한나씨를 통해 큰 용기를 얻었다는 인사를 전해온다”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한나씨의 도전은 끝이 없다
최근 한나씨는 부모님과 함께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시청각이 예민해 성인이 될 때까지 버스도 제대로 타지 못했던 그에게 왕복 10시간의 비행은 특별했다. 그는 귀국 후 “도전 잘 마쳤네”라고 했다고 한다.
3년 후면 서른이 되는 한나씨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김 사모는 자신의 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안전과 안락함이라고 했다. 그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극소수”라며 “그러다 보니 장애인들의 가족은 그들의 삶을 온전히 영위하는 게 매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인들이) 좋은 장애인활동지원사를 만난다면 가족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모는 앞으로의 채널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한나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볼까 해요.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서 지금보다 다양한 한나의 삶을 보여줄 예정이에요. 물론 전도도 하고요.”
통영=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