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 창문 하나 없는 방에 혼자 처박혀 있으면 뭐합니까. 그래도 여기(쉼터) 오면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먹고,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말동무도 하나 만들고 그러는 거지요.”(유정민·가명·57)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서 만난 유정민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참 소중한’이란 이름의 쉼터를 찾는다. 2021년 말 기준으로 4가구 가운데 3가구꼴(75.4%)로 ‘1인 가구’인 동네 주민들을 위해 친구들교회(배홍일 목사)와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이영우 신부)가 힘을 모아 3년 전 만든 공간이다.
‘마음을 위로하고 공동체를 만들어주자.’ 조사전문기관인 피앰아이가 31일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외로움 척도 지수와 종교 상관관계’ 조사에서 결과를 분석·도출한 외로움 극복을 위한 종교의 역할이다.
사회학·종교사회학 전문가들은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전한다는 기독교 본질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심리적 위로와 커뮤니티 형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곳이 교회”라고 입을 모았다. 외로움 돌봄 시대를 맞은 2023년 대한민국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내 마음을 만져주세요
설문 조사에서 ‘외로움 극복을 위한 종교의 사회적 역할(중복 응답, 전체 대상)’을 묻는 질문에 3명 중 2명 꼴(65.3%)로 ‘상담 등 심리적 위로’를 꼽았다. 커뮤니티 형성(52.3%) 물품 지원(14.5%) 재정 지원(13.2%) 일자리 마련(8.4%) 등이 뒤를 이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응답자의 종교 유무에 따라 1·2위 답변에 대한 중요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종교인의 경우 74.7%가 ‘상담 등 심리적 위로’를 선택해 비종교인(57.2%)에 비해 17.5%포인트나 높았다. 반면 ‘커뮤니티 형성’ 대해서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종교인의 응답률이 49.5%에 그친 반면 비종교인은 54.7%를 보였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사회 구성원 간 관계 증진을 도모하는 역할에 비종교인이 종교인보다 더 높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소그룹 활동과 친목 교제가 일상화돼 있는 교회 공동체는 지역사회의 관계망을 구축하고 정보가 모이기에 좋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장점으로 활용한다면 정서적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수원 세 모녀 사건’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굴하기 어려운 취약 계층에게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효민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도시화·근대화를 겪으면서 주거 문화의 변화가 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졌고 공동체성 결여가 외로움 문제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건 정부 회사 학교가 해줄 수 없는, 종교에 특화된 영역”이라며 “종교계가 신자 그룹 안에서만 묶으려고 하기보다는 외부의 사람들까지 함께 묶는 역할을 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종교계, 지자체-정부 잇는 메신저 가능
활동 분야별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세대별 기독교인의 주력 사회활동을 살펴보면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최근 1년간의 활동 경험’에 대한 질문에 연령별 참여도가 높은 활동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19~29세의 경우 ‘시민 사회단체 활동과 자원 봉사’ 참여 비율이 높았고 30~39세는 ‘친목 사교 단체, 취미 스포츠 여가 활동’이 타 연령대 응답자에 비해 높은 비율을 보였다. 50세 이상은 ‘지역사회 모임’에 대한 참여를 주도하고 있었다. 40~49세 기독교인의 경우 타 연령대에 비해 각 활동에 두각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자원 봉사 영역 가운데 ‘재능 나눔’에 강점이 엿보였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종교계 조직이 지자체와 정부를 잇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면 고독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대형교회가 아닌 지역 기반의 작은 교회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미국·호주의 사례처럼 대형교회가 헌금을 모아 필요한 지역 내 교회에 보내 돕는 방식이 활발해진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개교회 중심 NO, 세상 밖으로
교회가 경계·보완해야 할 점들도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교회가 지역 내 선한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할 때 과도하게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웃 섬김 활동을 통해 그 모습 자체가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만으로도 성경적 원리가 충분히 전달된다”고 강조했다.
주간 평균 신앙생활 시간이 높아질수록 단체 및 봉사활동 참여율이 높아지다가 가장 빈도가 높은(12시간 이상) 응답자 그룹에서만 참여율이 감소하는 경향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정 교수는 “해외 기독교인 연구 결과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사회의식도 높아지고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배타성이 강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회 중직자일수록 개교회 중심주의를 버리고 교회 밖으로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기영 유경진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