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27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어닝쇼크’를 겪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실적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한다. 긴 시각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바라보면서 ‘다음 호황’을 대비해 지속적인 투자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300조2314억원, 영업이익 43조3766억원을 거뒀다고 31일 밝혔다. 매출은 사상 최초로 300조원을 돌파했다. 대신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5.99% 감소했다. 순이익은 55조6541억원으로 39.46% 늘었다. 특히 반도체 부문의 실적 하락은 예상보다 더 가팔랐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은 지난해 4분기에 매출 20조700억원, 영업이익 2700억원을 올렸다. 영업이익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적자를 기록했던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저조했다. 올해 1분기에 DS부문이 적자 전환한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감산 없이 투자를 유지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실적발표 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투자 축소 및 감산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최근 시황이 실적에 우호적이지 않지만,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 시설투자(CAPEX)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다.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 필수 클린룸을 확보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3조1000억원을 시설투자했다. 올해는 고성능·고용량 메모리반도체인 DDR5와 LPDDR5X의 선단공정 전환, 테일러·평택공장 생산능력 확대 등을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반도체는 공급에 따라 가격 등락이 크다. 때문에 수요가 줄면, 공급을 축소해 가격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 대응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로 IT기기 전반의 수요가 급감했다. 이에 반도체 수요도 줄면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은 감산을 공식화했다. 투자도 축소한다. 그런데도 삼성전자가 투자를 줄이지 않는 건 ‘과거의 경험’ 때문이다. 반도체 시황 사이클에 맞춰 투자를 줄였다가 2018년 호황기가 왔을 때 공급 부족을 겪은 적이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장 경계현 사장은 “시황에 따르지 않고 꾸준히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챗GPT 등 초거대 인공지능(AI)이 급부상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2026년까지 메모리 반도체의 연평균 성장률이 반도체 전 분야에서 가장 높을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선단공정 전환 등으로 ‘자연 감산’이 이뤄질 수는 있다. 삼성전자는 “최고의 품질과 라인 운영 최적화를 위해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 설비 재배치 등을 진행한다. 미래 선단 노드로의 전환을 효율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를 추격하기 위해 초미세 공정 개발에도 속도를 낸다. 내년에 차세대 공정인 3나노 2세대를 양산할 예정이다. 미국 테일러 공장에서는 계획대로 내년 하반기에 4나노 공정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국내외를 망라한 신규 생산거점 확보에 대해 다양한 조건과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