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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정글’에서 ‘합력하여 선’ 이루며 헤쳐나간다

입력 2023-02-11 03:10:02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액셀러레이터로서의 비전과 합력해 선을 이루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가 창립기념식에서 직원들에게 기업의 지향점을 설명하고 있다. 씨엔티테크 제공
 
씨엔티테크 본사 입구에 걸려 있는 기도문. 씨엔티테크 제공


2022년 총 152억원, 104건의 초기기업 투자 진행. 액셀러레이터 최초 투자 포트폴리오 300개 돌파. 한파를 넘어 ‘투자 혹한기’라 불렸던 지난해 벤처 스타트업 투자시장에서 씨엔티테크(CNT Tech·대표 전화성)가 쌓아 올린 금자탑이다. 특히 투자 포트폴리오 300개는 대한민국 유일의 기록이다. 투자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에서 발표하는 월간·연간 순위표엔 신한캐피탈 KB인베스트먼트 한국산업은행 카카오벤처스 등 대중에게 익숙한 기업들이 모두 씨엔티테크 아래에 매겨져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변수와 위협요소(risk)를 분석하고 투자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업계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를 신념으로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전화성(46) 대표에게서 그 배경을 들을 수 있었다.
 
MS, 애플 보며 쏘아 올린 꿈

“90년대 초반엔 네이버도 없었고 벤처 붐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창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때 시선이 꽂힌 사람들이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CEO들이었습니다. 생각했죠. ‘컴퓨터공학과 전산학을 공부해야 창업에 다가설 수 있겠구나’라고요.”

동국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후 카이스트에서 전산학 석사 과정을 밟던 청년 전화성에게 기회가 왔다. 전화망 상 음성인식기를 개발해 학내 1호 벤처 기업을 출발선에 세웠다. 창업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군입대 시 공석이 되는 문제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공동 창업자들마저 전 대표의 해임안에 손을 들었고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청년 CEO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온몸에 염증이 퍼져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전 대표는 “인간적 교만함으로 쓰러졌을 때 비로소 나를 일으켜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회상했다.
 
‘십자가의 도’ 새기고 재도약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담당 의사 선생님의 인도로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묵상하면서 ‘십자가의 도’를 가슴에 새겼다. 핵심은 ‘주어지는 모든 게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잠시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연함이었다. 그때 생의 푯대가 돼준 말씀이 로마서 8장 28절이다. 새벽기도회와 수요, 금요예배까지 참석하며 평안을 찾은 그에게 기회의 문이 다시 열렸다. 2003년 씨엔티테크를 설립하고 오늘날 모바일 앱 배달주문의 모태가 된 ‘1588 주문 중개 서비스’를 개발해 IT와 외식업의 융합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10년여 만에 시장점유율 92%, 총매출 100억원 돌파(2012년 기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배달앱 주문의 기술 표준화까지 이룬 성과였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2011년 광야 같은 환경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스타트업 기업을 독려하고 육성하기 위한 투자 전문 액셀러레이터로의 길을 냈다.
 
하나님의 마음, 천사가 되어주다

스타트업은 안정보다는 불안정, 안전보다는 위험에 가까운 영역이다. 당연히 중견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리스크를 안고 성장을 추구한다. 수많은 창업자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기업의 지속성을 위해 찾아 나서는 이들을 ‘엔젤 투자자’라 일컫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통찰력을 갖고 선별 투자를 해나가는 게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이다. 전 대표는 “사업 아이템, 기업 환경 등 수많은 요소를 분석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바른 세계관과 책임감이 정립돼 있는 창업자는 실패를 겪더라도 특유의 회복탄력성을 발휘하고 결국 기업 생태계에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수없이 경험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 쓰고 ‘합력의 선’이라 읽는 리더였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언급하며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ESG활동과 성과에 대한 재해석을 논할 때는 철저한 분석가와 온전한 크리스천의 모습이 수시로 오버랩됐다.

“CEO와 기업의 조직적 역량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52%로 봅니다. 나머지 48%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ESG 활동을 펼치는 겁니다. 환경친화적 기업을 구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성취에 따른 적절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그중 하나죠. 사실 이 모든 과정의 본질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씨엔티테크 본사 입구에는 기업 슬로건 대신 기업의 지향점을 담은 기도문이 걸려 있다. 크리스천이 전체 직원의 20%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모습이다. 그는 “우려하는 시각이 있었지만 담대하게 가장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 기도문을 걸었고 감사하게 그 후 회사의 경영 실적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웃었다. 매년 두 차례 시무식과 창립기념일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씨엔티테크의 지향점과 조직 문화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기업 대표 외에도 대학원 겸임교수, 책 출간 등으로 24시간이 부족하지만 그는 일상을 견고하게 묶어주는 세 가지 루틴이 있다고 소개했다. 방점은 역시 로마서 8장 28절에 찍혔다.

“3년째 평일 오전 8시 40분마다 유튜브 생방송으로 스타트업을 한 곳씩 소개합니다. 6년째 매주 한 차례 투자 영역의 트렌드를 분석해 칼럼을 쓰고요. 매주 토요일 오전엔 어김없이 기업설명회(IR)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하는 거죠. 오늘도 선함 가운데 세워질 기업들을 응원합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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