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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졸업→부교역자 청빙’ 공식은 ‘NO’… ‘나만의 사역 루트’ 개척해간다

입력 2023-02-16 03:05:01
이유리(오른쪽) 전도사가 지난 3일 경기도 안양 만안구 노인복지센터를 찾은 어르신을 상담하고 있다.
 
신명철 전도사가 지난 2019년 교회 찬양단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
 
최인엽 전도사가 2019년 카메라를 들고 인도의 갠지스강을 여행하고 있다.
 
박지웅 전도사가 고려대 대학원 재학 중이던 2018년 8월 학회에 참석한 모습.


코로나19 팬데믹을 정면으로 관통하며 신대원 시기를 보낸 예비 목회자들이 학위수여식과 함께 새로운 출발선에 서고 있다. 이들 중엔 자신만의 사역 루트를 개척하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국민일보는 신대원 졸업 후 부교역자 청빙이라는 기존 공식을 깨고 새롭게 사역을 준비하는 4명의 졸업생을 만났다.

이유리(36·성결대 신대원) 전도사는 안양 만안구의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6년 차 사회복지사다. 학부 시절 사회복지학 실습 목적으로 방문했던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며 대화가 쌓일수록 마음의 방향키가 한 곳으로 향했다.

“한 번뿐인 인생을 덧없이 살다가 죽음을 맞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 분들의 영혼이 귀하게 느껴졌어요. 신학을 배워 죽음을 앞둔 어르신들에게 복음을 알려드리면 공허함을 달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출석 중인 교회에서도 이 전도사의 전문성이 그대로 발휘됐다. 교회 안팎의 홀몸 어르신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섬세하게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반찬이나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청소를 도와드리면서 어르신들의 ‘영혼 친구’가 됐다.

복음을 품은 복지사로 살아가는 그는 “복지센터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이라며 “천국이라는 소망이 있다는 걸 차분하게 설명했을 때 두려움을 걷어내는 모습을 발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0월엔 센터에서 만난 어르신이 교회에 출석하는 결실도 보았다”고 소개했다.

신명철(50·감신대 신대원)씨는 ‘일하는 전도사’다. 일주일의 나흘은 건설현장 노동자로, 나머지 사흘은 교회 청소년부 시간제 사역자로 활동한다. 베이스기타 연주자, 요식업계 종사자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신대원 진학의 불을 댕긴 건 해외선교에 대한 꿈이었다. 그는 “가장으로서 생계에 대한 걱정을 떨치기 힘들었는데 팬데믹으로 온라인 수업이 일상화되고 일을 병행할 수 있었던 게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신 전도사의 궁극적 목표는 ‘성도들의 영과 육을 살찌우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음악 음식 신학으로 이어지는 그의 경력이 오롯이 접목된 사역인 셈이다. 그는 “목회 환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목회자로 살아가야 하는 분들이 많다”며 “범교단적으로 일하는 목회자를 폭넓게 수용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최인엽(29·감신대 신대원) 전도사는 학부 시절부터 신학 공부와 사진 촬영, 전시회를 병행한 작가다. 그의 학적부엔 신대원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 기록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는 “기성 교회의 제도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건 나 말고도 다수의 목회자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 전도사가 지향하는 목회는 교회 울타리 밖에서 신앙이 없는 사람과 교제를 나누며 예수님을 알리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과거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던 시기를 보낸 그에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역은 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경제적 소외 계층일수록 미술 음악 등 순수예술에 소외되기 십상입니다. 복음과 접목해 공익활동을 협업하는 청사진을 그리는 이유도 그겁니다. 독립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해 얻은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는데 그 범위를 넓혀가고 싶어요.”

박지웅(33·총신대 신대원) 전도사는 지난 7일 영국 케임브리지대로부터 국제정치학 석사 과정 합격 통지를 받았다. 신대원 졸업생이 신학 대신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아들을 선교사로 서원한 부모님이 6살 때부터 입이 닳도록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성공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라. 지식인 한 명이 회심했을 때 그가 미칠 영향력은 엄청나다.”

박 전도사의 롤모델은 고려대 학부 시절 만난 손창남 선교사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회계학 교수로 사역하며 캠퍼스 선교를 했던 손 선교사는 그에게 ‘교수로서 전문인 선교를 펼쳐보겠다’는 비전을 품게 했다.

신대원 시절 학비를 지원했던 서울의 한 교회가 교역자 청빙까지 제안했지만 확고한 비전을 접을 순 없었다. 그는 “3살 딸을 키우고 있던 때여서 청빙 제안이 솔깃했지만 선교 비전이 명확했기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며 웃었다.

4인4색의 예비 목회자들에겐 교집합이 있었다. 팬데믹 위기를 사역 준비를 위한 기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엔데믹 시대 사역지를 향해 비상할 그들의 날갯짓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현성 조승현 인턴기자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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