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금식 한번 해볼래요?”
데스크의 권유에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나도 모르게 꼭 쥐었다. ‘미디어 금식’이란 일상 속에서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나 게임, 만화, TV 프로그램 등 미디어 사용을 일정 기간 절제하는 활동을 말한다. 대신 성경을 묵상하며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채워보자는 취지로 사순절 기간 주요 교회와 성도들이 참여하는 신앙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과연 내가 도전할 수 있을까. 일과 여가, 소통과 휴식 등 내가 몸담고 있는 일상의 9할이 스마트폰으로 이뤄지는데,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과 잠시 결별할 수 있을까.
불안함에 속이 뒤집어지다
지난 2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9시간 미디어를 끊어보기로 했다. 업무 연락이 오면 받되 그 외 개인적인 연락, SNS, 동영상 시청, 인터넷 서핑 등은 일절 외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직장과 주변인의 양해를 사전에 구하고 오전 8시쯤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바꿨다. ‘미디어 금식 중(오늘 오전 9시~18시까지 카톡을 못 받습니다).’ 그리고 잡생각이 들 때는 준비한 성경과 묵상집을 읽기로 했다.
평소 이메일, 카톡 등 숫자 알림 ‘1’이 눈에 띄면 바로바로 확인해 없애곤 한다. 이런 성향이다 보니 금식을 시작하고 배경화면을 볼 때마다 숫자 알림을 없애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는 일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출근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스마트폰 알림이 울릴 때마다 ‘업무 관련 연락은 아닐까’ ‘내가 이 미디어 금식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이런저런 걱정이 어느 순간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신경성인지 배가 슬슬 아파오더니 결국 장이 꼬이는 증세가 나타났다. 연신 온수를 들이켜며 아픈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손톱 옆 거스러미를 뜯으며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힐끗힐끗 바라봤다. 찬송가를 들으면 진정될 것 같다는 생각에 겉옷 주머니에 들어있는 에어팟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이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도 금식 대상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챙겨온 성경책을 꺼냈다.
간만에 느껴보는 성경의 감촉
문득 오랜만에 손으로 성경책을 넘겨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배드릴 때도 화면에 띄워주는 말씀만을 읽어왔기에 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꾐에 넘어가는 장면을 읽을 때(창 3장), ‘9시간 동안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미디어 금식을) 잘 버텨보자’며 스스로 다짐했다. 그런 결심도 잠시, 그만 실수를 저질렀다.오전 11시쯤 직장동료로부터 온 카톡 알림을 확인해버렸다. 이름만 보고 업무 관련 연락이라고 판단해 조급한 마음에 사고를 친 것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전화기를 가방 안쪽 깊숙이 넣었다. 오후 2시 반쯤 업무 연락이 왔다. 날짜를 확인하려던 차에 무의식 중 스마트폰의 캘린더 앱을 켜려고 했다. 다이어리에 달력이 있는데도 스마트폰에 손이 먼저 간 스스로의 행동에 ‘내가 이토록 스마트폰 중독이었구나’ 절감하게 됐다.
오후 5시가 가까워오자 불안함이 덜어지면서 신기하게도 평온함이 밀려들었다. 머리를 식히는 느낌도 받았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준비해간 묵상집에서 건져올린 말씀이 달게 느껴졌다.
하루 만이라도 미디어 금식 해볼 만
일과가 끝나고 스마트폰을 확인해봤다. 9시간 동안 17통의 문자 메시지, 73통의 카톡 메시지, 1통의 이메일이 와 있었다. 그때그때 확인하지 못했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해서 장이 뒤집혔던 것인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가장 바쁜 월요일, 미디어를 끊는 시도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 하루 정도는 미디어와 잠시 이별할 필요도 있겠다’는 게 미디어 금식자가 느낀 교훈이다.
성결대 신학부 문화선교학과 윤영훈 교수는 26일 “미디어 금식과 같이 미디어를 절제하는 개인적 경건 훈련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이벤트성보다는 정기적으로 진행했을 때 더 의미가 있고, ‘미디어 금식’보다는 ‘미디어 가려먹기’가 나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동시에 미디어는 필수불가결한 정보습득 도구이기에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글·사진=조승현 인턴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