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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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정근 (17) 복지와 인권 사회문제 해결하고 싶어 시작한 정치 도전

입력 2023-03-03 03:10:01
정근 원장이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뒤 지역 시장을 돌며 상인과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초긍정으로 살던 내 삶에 세 번째 실패가 왔다. 낡은 정치판을 바꾸는 동시에 지치고 고달픈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의욕적으로 내민 도전장, 바로 정치였다. 30여년간 지역에서 다져온 신뢰를 토대로 복지와 인권 사회문제 해결에 내 역량을 사용하고 싶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정치 도전은 내 인생의 실패한 순간 중 하나가 됐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오전에는 진료를 보고 오후엔 발품을 팔며 유권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유력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불리한 싸움이라고 다들 말렸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낙선이었다. 결과를 받아들고 눈물을 쏟은 건 아쉬움 때문이 아니었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쏟아지던 주위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 때문이었다.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역시 무소속이었다. 실패할 걸 알면서도 계속 출마하는 나를 두고 “왜 계속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사람들이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진흙탕 싸움이 난무하는 정치판에 왜 발을 들이려고 하느냐는 우려도 했다. 정치판엔 원칙과 열정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절제 청결 중용 등 13가지 덕목을 한 주에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고 한다. 철학자 칸트는 정확한 시간에 기계처럼 실천했다. 잿빛 코트 차림에 지팡이를 짚고 집 밖으로 나오는 칸트를 보고 마을 사람이 오후 3시 30분이라는 걸 알아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프랭클린의 덕목 실천이나 칸트의 오후 산책은 말하자면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의식, 리추얼(ritual)이었다. 리추얼은 ‘종교상의 의식 절차나 의례’ ‘항상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과 같은 일’을 의미한다. 이는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에게 리추얼은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것, 수술 전 기도하는 것이었다. 사실 벌인 일도 많고 관여할 일도 많은 나는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내 삶에 여유를 주는 건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를 때다. 수술 전 차를 마시고 심호흡하며 기도를 드릴 때도 짧지만 여유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무슨 일을 추진하기 전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확인되면 생각을 멈추고 즉시 행동에 옮겼다. 내일로 미루면 그 일의 성공 확률은 확 줄어든다. 무엇보다 기도로 응답된 메시지는 곧바로 행동에 옮긴다.

결과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건 나중 문제다. 의사회에서 일하고 개성공단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재난 현장에 가면서 만들어진 삶의 태도다. 일은 시작과 끝 모두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걸 고르라면 결과보다 시작하는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심플하지만 이것이 내 인생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다. 정치 도전도 마찬가지였다. 최악의 순간을 경험했지만 과정을 통해 나는 의사로서 해야 할 역할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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