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포수가 작은 사슴을 보고 활을 쏘았습니다. 화살 맞은 사슴은 그 자리에 쓰러졌지요. 그런데 갑자기 더 큰 사슴이 나타나더니 펄쩍펄쩍 날뛰다 쓰러졌습니다. 어미 사슴이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어미 사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습니다. 단장의 고통이지요. 새끼의 고통이 어미에게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 우리 하나님은 긍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흔히 ‘긍휼’이라는 말을 ‘사랑’ ‘자비’라고 번역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긍휼’이라고 번역한 히브리 말은 ‘창자’라는 말과 뿌리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과 같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불쌍히 여기셨다’라고 번역한 그리스 말도 ‘창자’라는 말과 뿌리가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시는 긍휼하신 분입니다.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마음, 그 긍휼한 마음을 바라보는 절기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