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통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특히 크고 작은 질병과 싸우는 환자와 그 가족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선물’(비아토르)의 저자인 영국 외과 의사 폴 브랜드는 ‘고통은 선물’이라고 단언했다. 선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한센병 환자를 50년 넘게 돌본 브랜드는 ‘신체 경고 시스템’인 고통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임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선물’의 공저자인 미국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는 최근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몸소 겪게 됐다고 고백했다. 암 투병 중인 국내외 유명 목회자 역시 질병 이후의 삶이 인생의 전성기라고 입을 모았다.

미 기독 언론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T)’의 편집인이기도 한 얀시는 2월 말 블로그에 자신이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고 털어놨다. ‘고통은 곧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썼지만 그는 “파킨슨병이 기적처럼 내 삶에서 제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가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키를 타다가 넘어졌고, 이후 걸음걸이와 글씨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증상은 파킨슨병 같았지만 주치의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상생활이 어려워졌고, 이후 만난 신경과 전문의로부터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테니스와 비슷한 피클볼을 하다가 코트에서 앞으로 꼬꾸라졌고, 곧바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평범한 것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됐다”고 했다.

얀시는 친구가 응원차 보낸 시편 71편에서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라는 9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아내와 주변의 도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선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했다.


서울 높은뜻숭의교회 담임목사였던 김동호 목사는 2019년부터 해마다 폐, 전립선, 갑상선 암을 진단받았다. 그는 암과 관련한 소회를 페이스북에 자주 올렸다. 연이은 항암치료 때문에 “몸무게가 58㎏까지 빠졌고 석 달 동안 4번 졸도했다”고 했던 김 목사는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죽음은 골리앗이고 나는 다윗’이라는 심정으로 그는 유튜브에 온라인 설교 ‘날기새(날마다 기막힌 새벽)’를 정기적으로 올렸다. 은퇴한 목사였던 그에게 날기새는 삶의 목적이 된 중요한 사역으로 발전했다. 30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그의 설교 유튜브 채널을 구독한다. ‘말씀 속에 숨어있는 은혜를 캐는 작업’인 설교 준비를 하면서 고통과 우울감을 몰아냈다고 한 그는 “암에 안 걸렸으면 날기새를 생각 못 했을 수도 있는데 날기새를 생각하면 암도 축복처럼 느껴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정말 그렇다”고 했다. 해외선교사를 돕는 사역단체인 에스겔선교회도 이끄는 김 목사는 “지난 4년은 내 인생의 전성기였다”고 확언했다.

그는 “체력이 감당해 주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은혜가 됐다”며 “사도바울의 약할 때 강하다는 고백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암 투병을 하는 시기는 광야가 분명하지만, 그 시련을 통해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고 했다.

지난 30일 김 목사의 페이스북 글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하는 질문에 대한 고찰이 등장한다. “슬픔 아픔 고통 괴로움 죽음 등 우리를 힘들게 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고 설명한 그는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고 생명과 기쁨, 평안을 주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선교단체 예수전도단(YWAM) 창립자인 로렌 커닝햄 목사는 폐암 4기 진단을 사역에 박차를 가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듯했다. 아픈 사실을 공표한 지 몇 주가 지나지 않은 지난달 말 YWAM 페이스북에는 세계 모든 언어로 성경을 제작하는 사역에 참여한 커닝햄 목사 모습이 공개됐다. “내일 4기 암 진단에 관련한 병원 예약이 돼 있다”고 한 그는 “야심차지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의 완성을 위해 함께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의 암 진단은 아내 달린 사모의 발표로 지난달 초 알려졌다. 달린 사모는 “조직 검사와 CT 촬영 결과, 폐에 느리게 자라는 일부 결절이 암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암세포가) 폐 외에도 뼈와 림프계 등 광범위하게 퍼졌다”면서 “기적적인 것은 암세포가 뇌까진 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은 모든 것이 이상하다. 종양 관련 전문의는 보통 폐의 병변은 빠르게 자란다고 하지만 남편의 암은 느리게 자랐다”며 “우리가 아는 건 그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성도들 기도의 응답”으로 남편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다고 간증한 그는 “남편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랑과 기도 부탁드린다”고 했다.


뉴욕 맨해튼 리디머장로교회의 설립자이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팀 켈러 목사는 3년 전부터 췌장암 4기로 투병 중이다. 2002년 갑상선암을 앓기도 했던 그는 미 국립암연구소에서 면역치료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등 꾸준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4월 내내 암 표적 치료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최근 페이스북에 밝혔다. 그는 지난해 6월 비슷한 치료를 받았다. 켈러 목사는 “당시 치료가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도가 필요한지 느낀다”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의존, 치료 과정에 대한 그분의 섭리, 그리고 어떤 일이 닥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우리의 소망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바랐다.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암 치료였지만, 그 과정을 통해 신앙이 더 성숙해졌다고 켈러 목사는 간증했다. 예후가 좋지 않은 췌장암 말기 진단 후에도 저서 활동을 하는 등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과거 한 온라인 기독 방송에 출연해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내와 나는 암 진단을 받기 전의 기도 생활과 영적인 삶으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암 투병으로 인해 시편 90편 14절인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구절을 진정으로 경험하게 됐다”고 했다. 죽음을 앞두고 있기에 신앙과 일상 모든 영역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바뀌었다고 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