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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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박현동] 풍계리와 송이버섯

입력 2017-04-12 17:07:39



네이버에 ‘풍계리(豊溪里)’를 치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외에 경기도 이천, 충남 보령의 풍계리가 나온다.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음에도 내가 들어본 곳이라곤 북한 풍계리뿐이다. 1952년 북한 정권의 행정구역 통폐합 과정에서 신설됐다. 갈 수 없는 곳이다. 불과 2㎞ 떨어진 곳엔 ‘16호 수용소’라고 불리는 북한 화성정치범수용소가 있다. 좀 슬프다. 구글에 풍계리를 입력하면 67만9000개의 검색결과가 뜬다. 절대다수는 북핵 관련 뉴스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철옹성’이다. 핵실험장이 있는 만탑산은 높이가 해발 2205m. 학무산(1642m) 등 주변 산도 1000m를 넘는 첩첩산중이다. 천혜의 핵실험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러나 핵에 완벽한 것은 없다. 잦은 핵실험으로 방사능에 노출된 주민들이 피부병과 미각상실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110㎞ 떨어진 백두산 화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핵과 함께 풍계리가 ‘태풍의 핵’이 된 것은 1993년.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했다. 이후 본격적인 핵 개발에 나선 북 정권은 2006년 10월을 시작으로 5차례 핵실험을 했다. 이 중 1, 2차는 김정일 정권 때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후 핵능력은 급성장했다. 2013년 3차 핵실험에 이어 지난해 1월에는 수소핵실험을 했고, 불과 8개월 만인 같은 해 9월 5차 핵실험을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북한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 움직임을 보면 6차 핵실험이 임박했다”고 전했다.
 
지명은 대개 지역의 특성을 담고 있다. 풍계리도 그렇다. 말 그대로 풍년이 잘 들고, 물이 넘치는 곳이다. 조선향토대백과사전은 길주남대천과 장흥천이 흐르는 들녘에는 콩, 벼, 감자, 옥수수가 풍부하고 산에는 송이버섯이 유명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예전엔 이 지역 사람들 심성도 넉넉했다고 한다. 한때 물 좋고, 사람 좋고, 조선 최고의 자연산 송이 산지였던 풍계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한데 북핵과 김정은을 해결할 권한이 우리에게 없으니…. 씁쓸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글=박현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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