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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미국의 또다른 수렁이 되나?

입력 2017-08-24 07:06:5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포트마이어 기지에서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전략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새로운 아프간 전략이 ‘시간을 바탕으로 한(time-based)’ 접근법에서 ‘상황에 바탕을 둔(based on conditions)’ 접근법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핵심 방침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포트마이어 기지에서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된 TV연설을 통해 “아프가니스탄과 주변의 광범위한 지역이 엄청난 안보위협에 직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을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언제 (탈레반을) 공격할 지 말하지 않겠지만, 반드시 공격할 것”이라며 “우리 군대는 승리하기 위해 싸울 것”이란 말로 적극적인 군사 개입 의지를 드러냈다. 트럼프는 이어 “(미국인들이) 승리 없는 전쟁에 지쳤다”면서 “미국인들이 느끼는 좌절감을 공감한다. 결국엔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프간 철군에 무게를 실어왔던 미국 대통령의 입장 선회는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이 전통적 개입주의로 전환될 것이라는 선언적 의미가 크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도 “모든 각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매우 자세히 공부하고 깊이 고민했다”면서 “성급한 미군 철수가 남긴 공백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를 포함한 테러리스트들이 메우게 될 것”이라고 아프간 전략 수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4000명 규모의 추가파병이 거론됐던 예상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향후 군사 행동을 위한 병력 숫자와 계획을 밝히지 않겠다”며 아프간 추가파병 규모나 구체적인 일정은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프간 추가파병이 현실화됐다는 관측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TV연설을 앞두고 4000명 규모의 미군 추가파병안에 이미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2010년 8월 기준 최대 10만명까지 증원됐던 아프간에는 현재 8400명 정도의 미군 병력이 남아 현지 정부군 훈련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주변을 순찰 중인 미군. [AP뉴시스]

이날 TV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돕겠지만, 우리의 헌신은 ‘무제한이 아니며(not unlimited)’ 우리의 지원 역시 ‘백지수표(blank check)’가 아니다”라며 “미국인들은 진정한 개혁과 진정한 진전, 진정한 결과를 기대한다”는 전제조건도 곁들였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에 대한 압박 강화 방침도 공론화 됐다. 트럼프는 “파키스탄이 혼란과 폭력, 테러 행위자들에게 ‘은신처(shelter)’를 제공한다”고 비판하며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인도를 향해서도 “아프가니스탄 안정에 대한 인도의 중요한 공헌에 감사한다”면서도 “경제원조와 개발 분야에서 우리의 전쟁을 도왔으면 한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아프간 개입 확대는 여전히 어두운 전망 속에 갇혀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 배후인 알카에다와 연계된 탈레반 퇴치를 명목으로 2001년 10월 7일 아프간을 침공하며 시작됐다. 올해로 16년째에 접어든 장기전은 미국이 가장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는 전쟁으로 남았다. 

그동안 숱한 인적 희생을 치르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했음에도 여전히 전쟁의 현황은 불리하고 종전에 대한 전망조차 불투명하다. 아프간에서는 지금까지 2371명의 미군 전사자가 나왔고, 미국 정부는 지금껏 약 8000억 달러(약 908조원)를 아프간 전쟁에 쏟아 부었다. 전역한 아프간 전상자 보훈 등의 지출까지 포함되면 전체 전쟁 비용은 1조 달러(약 1135조원)를 넘어선다. 가장 ‘지난하면서도 비싼’ 전쟁인 셈이다. 

이렇듯 수렁이 돼버린 아프간에서 미국이 쉽게 발을 빼지 못하는 이유는 현지에서 이대로 미군이 철군하면 아프간이 2001년 당시처럼 테러리즘의 ‘무주공산’ 겸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해방구’가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라크에서 미군 철군을 서두른 것이 결과적으로 IS의 확장을 불러왔던 시행착오가 아프간에서 값비싼 학습효과를 발동시켰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의 아프간전 모니터링 프로젝트의 편집자 빌 로지오는 CNN 방송에 “탈레반은 2002년 초 이래 아프간 내 최대 영토를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탈레반은 지난해 기준으로 여전히 전체 아프간 국토의 약 36.6%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래에는 중동에서 근거지를 잃은 IS도 같은 수니파인 탈레반과 손잡고 아프간에서 ‘풍선효과’ 방식으로 세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앞서 유엔 아프간지원단은 21일 탈레반과 IS 대원들이 이번 달 초 아프간 사리풀주 미르자왈랑에서 점령지를 탈출하려던 다수의 현지 주민들을 학살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경계 근무 중인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AP뉴시스]

아프간 정부는 자력으로 탈레반을 격퇴하기 역부족인 상황에서 지나치게 ‘신중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달리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리어 사태 해결의 기대감을 갖는 분위기다. 

하지만 마이클 쿠겔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남아시아 수석연구원은 미국 CNN에 “트럼프도 아프간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며 “탈레반을 평화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야 하지만 지금 상황은 탈레반에 유리하다”고 비관적으로 진단했다. 

과거 구 소련도 아프간에서 경험했던 진퇴양난의 딜레마 속에서 대선 기간 아프간 철군을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AP뉴시스]

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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